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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주인자리를 내어드릴때..

목사님의 설교에서 '내 아이가 성공한 삶을 살게 된다 하더라도 구원받지 못한다면 성공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라고 하신것을 들었습니다. 순간 멍하고 그동안 아이에게 했던말들을 떠올려보았습니다. 더 열심히, 주도적으로, 최선을 다해, 너의 삶이니 책임감 있게 행동하라고 했던 말들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스스로 주인된 삶을 살때 행복할거라고 하지만 진짜 행복은 주안에만 있음을 고백하며 아이를 주님이 만나주시기를 기도하는 하루 되길 원합니다.

죄의 모든 뿌리는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 되는 것이다.
반대로 믿음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이 전적으로 하나님 되시도록 하는 것이다.

이 둘은 전혀 다른 두 방향을 향하는 것이다.
성경이나 2천 년 기독교 역사의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바로 이 결정적인 돌파가 있었다. 그들은 이 계기를 통해 전혀 다른 삶의 수준으로 들어갔다. 믿음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올라간다기보다 결정적인 순간에 도약하는 것이고, 또 다른 수준의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결정적 순간들이 반복되면서 어떤 믿음의 사람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차원의 믿음의 삶을 이 땅에서 실체로 누리기도 한다.
찬송가에도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는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주님과 그분이 인도하시는 음성만이 분명한 사람들, 그래서 이 세상의 구조와 시스템도 컨트롤할 수 없는 삶을 살아내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초대 교회 시대에는 이런 이들을 가리켜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행 17:6)이라고 표현했다.
세상의 구조와 시스템이 먹히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돌파하여 사는 이 사람들 때문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혼란스러워한 것이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네가 주인이 되는 삶을 살라”라고 외친다.
그리고 자신이 주인이 된 삶에서 ‘comfort zone’을 더 넓히고 확장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복음은 예수가 주인인 삶으로 우리를 초청한다. 나의 안정적인 삶을 확장하는 것은 성공이 아니다. 터진 웅덩이를 더 넓히는 삶에서 나와 예수가 주인인 바다로 들어가는 삶, 창조주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 항해하는 삶이 성공적인 삶이다.

이 항해를 하다보면 폭풍이라는 위기의 순간이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주님이 동행해주시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항해의 끝은 아버지 하나님의 유업이 있는 천국이기 때문이다. 땅의 사람들이 더 큰 웅덩이를 만들어서 자랑할 때도 우리는 큰 파도와 비바람을 뚫고 천국을 향해 나아간다.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이다.

오래 전 아이들과 함께 <개미>라는 만화 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수많은 개미들이 개미집을 중심으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 애환을 담은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놀라웠다. 내내 개미집 주변만을 보여주던 영화의 화면이 그 모든 것이 다 들어오는 전체 화면으로 확대되었는데, 그곳은 인간들이 사는 세상의 공원, 그것도 한낱 쓰레기통 옆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난리와 소동으로 가득하던 개미집과 비교할 수 없는 인간 세상을 보니 ‘아, 이게 아니구나’라고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땅의 사람과 하늘의 사람, 자신이 주인인 삶과 하나님이 주인인 삶을 사는 자들의 차이를 잘 나타내준다. 사랑하는 여러분, 웅덩이나 개미집이 아니다! 우리 항해의 끝은 바다다. 하늘나라다!
<유브라데 강을 넘어>윤성철 p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