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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면 안 돼요 : 선교를 위한 준비 – 김동호 크리스천베이직

선교적 소명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헌신과 준비다. 선교적 헌신이 없다면 아무리 잘 준비된 사람이라고 해도 선교적인 삶을 살 수 없다. 반대로 아무리 선교적인 헌신이 투철하다고 해도 그에 따라 철저히 준비되지 않았다면 선교의 효과가 크게 나타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선교적인 소명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헌신과 준비가 뒤따라야만 한다.

여기서는 선교에 헌신한 사람이 효과적인 선교를 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다루어보려고 한다. 좀 더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준비해야 한다.

첫째가 믿음

선교(宣敎)와 전도(傳道)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宣’(베풀 선)과 ‘傳’(전할 전)이 아니라 ‘敎’(가르칠 교)와 ‘道’(길 도)다. ‘敎’와 ‘道’가 철저하지 못하면 어떻게 온전한 선교와 전도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선교적인 소명을 위해 준비하는 자는 먼저 기독교의 ‘敎’와 ‘道’, 즉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신념이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전서 4장 1,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대개 사람들이 이 말씀 속에서 가장 많이 인용하는 부분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잘 살펴보면 충성보다 앞서서 강조하고 있는 말씀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충성보다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것을 더 중히 여기고 계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충성하면 엉뚱한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충성도 중요하지만 충성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일이다.

‘敎’와 ‘道’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는 ‘宣’과 ‘傳’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선교적인 소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믿음의 비밀을 아는 일이다. 그러면 우리는 믿음의 비밀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그것은 말씀의 실험을 통해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연구만 한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실험을 해보아야만 한다. 씨앗은 땅에 심어보아 싹이 나오는 것으로 그 존재를 알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심어서 그 결실을 통해 믿음의 비밀을 얻을 수 있게 된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우리는 말씀의 농사와 실험으로, 보이는 증거와 실상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선교적인 소명을 잘 감당하려면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듣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할 때 믿음의 비밀을 간직한 사람이 되고 그제야 비로소 선교적인 소명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탁월성과 전문성을 구비하라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전술 중의 하나는 유리한 고지를 먼저 점령하는 것이라고 한다. 고지를 점령하면 전략적으로 최소한 3배에서 5배까지 유리하다고 한다. 그것은 영적인 전투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앞에서 직업이 곧 소명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직업을 소명으로 알고 직업의 세계에서 선교적인 소명을 잘 감당하려면 그 사람은 직업적인 전문성과 탁월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그것이 곧 고지를 정복하는 것이 된다.

직업을 소명으로 알고 직업 세계에서 선교적인 소명을 감당하려면,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누구보다 탁월하고 우수해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남에게 뒤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낮아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에게 낮아지라고 말씀하신 것은 자세에 관한 것이지 실력에 대해서가 아니다. 예수님은 자세를 낮추라고 말씀하셨지 실력을 낮추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자세를 낮추는 것이 겸손이지, 실력을 낮추는 것은 겸손이 아니다.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상한 갈대가 되기를 원하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쉽게 꺾이지 않는 백향목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꺼져가는 등불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한 바람에도 쉽게 꺼지지 않는 횃불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먼저 자기가 맡은 전문 세계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만 그 세계에서 선교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불성실하여 뒤떨어지고 낙오된 자가 그 세계에서 선교의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선교에 자신의 소명을 두고 준비하는 사람은 항상 ‘탁월성’(excellence)과 ‘전문성’(speciality)을 염두에 두고 학업에 정진하는 일과 훈련하는 일에 성심을 다해야 할 것이다. 선교를 핑계로 공부하는 일과 훈련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탁월성과 전문성으로 자기 직업의 세계에서 승리하고 성공하는 선교사들이 될 수 있기 바란다.

사랑으로 감당하는 선교

일반교육과 기독교교육에는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일반교육의 진리는 증명을 통해야만 이해가 가능한데, 기독교교육의 진리는 증명으로는 이해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교육의 진리는 증명을 통해 이해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이해에 이른다. 그러므로 기독교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그런데 믿음은 교육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사랑에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선교하려고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사랑의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없다면 선교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나의 교회학교 담임선생님은 홍 선생님이라는 대학 2학년의 여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은 아이들을 무척이나 예뻐해주셨다. 주일예배 때마다 아이들을 자기 무릎 위에 앉혀놓고 예배를 드리시곤 했다. 내 차례가 되어 그 선생님 무릎 위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게 되면 세상에 그것처럼 좋은 일이 없었던 기억이 있다.

그 선생님 때문에 내 취미며 특기는 교회 다니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 선생님의 사랑으로 내 안에는 어려서부터 쉽게 믿음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 선생님이 말씀하는 것이면 뭐든지 다 믿을 수 있었다. 그 믿음으로 나는 쉽게 기독교 진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결국 목사가 되었다. 나는 내가 목사가 된 가장 첫째가는 이유로 주일학교 2학년 때 그 담임선생님의 사랑을 꼽는다.

선교적인 소명을 감당하려면 무엇보다 이 사랑이 중요하다. 사랑이 없으면 선교적인 삶을 견딜 수도 없고 혹시 견뎌낸다고 해도 선교적인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사랑이 없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은사다. 그러므로 사모하면 누구나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하나님께 이 사랑의 은사를 받으면 그가 어떠한 성격의 사람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는 비로소 선교적인 소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라고 말씀하셨다. 선교적인 소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성령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선교적인 삶을 살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세상을 초월함’이다. 세상을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나라를 위한 일꾼으로서의 삶을 살아내기 어렵다.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

세상을 초월하려면 하늘을 보아야 한다. 하늘을 보는 사람만이 세상을 초월할 수 있다. 하늘을 보려면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있다는 말씀이다.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나라를 볼 수 있게 되면, 그는 땅에 살아도 땅을 초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선교적인 소명을 감당하려면 무엇보다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해야 한다. 성령으로 거듭남을 체험하지 않고 선교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선교의 삶을 견뎌내지도 못할 뿐 아니라 혹시 견딘다고 해도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성령을 받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 주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성령 받기를 사모하면 받을 수 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 11:9-13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도 간절히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 것이 바로 성령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성령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반드시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선교적인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성령이다.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여 구하고 찾고 두드려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세상에 나아가 주(主)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 선교의 소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