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는 선택과목이 아닙니다. 광야는 하나님이 정하신 필수과목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광야로 몰아넣으신 것처럼 우리도 광야로 밀어 넣으십니다.
다윗은 왜 광야로 나가게 되었습니까? 사울이 그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했기 때문에 도망간 것입니다. 다윗 스스로 광야로 간 것이 아닙니다.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밀어서 광야로 쫓겨 간 것이지요.
성도에게는 광야를 선택하거나 거부할 권리가 없습니다. 성도에게 광야는 저절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광야에서 우리를 순금과 같이 만드십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_욥 23:10
그러니 지금 광야를 지나고 있다 해도 너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광야에서는 무엇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광야에서는 살아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광야 훈련의 목적은 생존입니다.
거기에서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누릴까?’를 생각하는 것은 호사(豪奢)입니다. 이는 마치 특전사가 야산에서 혹한기 생존 훈련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어떻게 하면 빨리 이 광야를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광야에서 문제를 해결할까 발버둥치지 마십시오.
광야를 받아들이고, 그곳에서 그저 성도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광야를 현실로 받아들여 그곳에서 기도하세요.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이 당신을 광야에서 붙잡으시고 일으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옮겨놓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현재를 사는 성도들에게도 엔게디 광야는 필수 코스입니다. 우리는 광야를 지날 때 만나게 되는 어렵고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외치며 당당히 맞아야 합니다.
“광야야, 내게 와봐라! 절망아 덤벼봐라! 문제야 밀려와봐라!”
믿음의 사람이 되면 눈빛이 달라집니다. 광야를 현실로 받아들일 때 성도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마치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에 얼굴에 광채가 비쳤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담대함으로 빛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말씀을 듣고 결단하고 삶의 현장으로 향할 때 성도의 눈빛이 달라져야 합니다.
광야의 시간은 기도의 영성이 깊어지고 자라는 시간입니다. 지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깊은 고통의 시간, 고독한 광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바로 지금이 하나님이 당신을 만지시는 시간인 것입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고독한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을 인도할 것입니다.
- 베드로전서 4장 12,13절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 시편119장71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 야고보서 1장 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