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내 혈관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흐른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눈만 뜨면, 그 달고 오묘한 말씀을 먹고 싶어 안달했던 시간이 수없이 많았지요. 비록 마흔이 넘어서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 들였지만, 하루에 세 갑씩 피우던 담배를 끊은 후 집과 직장에서 잠언, 전도서, 시편, 요한복음에 심취해 읽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우둔해진 머리로 암송하려고 몸부림치던 일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말씀을 암송한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말씀에 심취해서 암송 묵상을 하다가 잠드는 건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과 영적 대화를 나누다가 하나님나라로 가는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 한평생』 여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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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고유함을 찾는 공간이자 하나님의 부르심을 분별하는 장소입니다. 기도를 통해 자신의 고유한 길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이끌어 오신 삶의 방향을 되짚어 보아야 합니다. 고유한 자신의 길이 바로 부르심이고, 영적으로 성장하는 사람은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부르심은 기도를 통해 확인되고 생생해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내적 움직임, 성령의 소리에 민감해야 합니다.
『묵상과 기도』 김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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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선물이 되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사시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는 하나의 선물이 되고 우리 안에 사시는 예수도 그들에게 선물로서 주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친절과 배려와 칭찬과 용서와 봉사와 위로는 타인에게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그것들은 또한 예수를 선물하는 방식입니다.
『예수를 발견하는 성경읽기』 한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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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전 세계가 아픔을 호소하는 신학적 상황이다. 이 아픔과 비통은 신학이나 교리보다 더 크다. 이 아픔과 비통의 상황을 성경 한두 구절로 재단하거나 이해하려는 것은 무리다. 욥의 고통에의 성육신적 참여 없는 세 친구의 스콜라주의적이고 학자적인 태도는 너무 차갑고 잔인하게 느껴진다. 우리 시대의 고통과 비통은 학자적 연구의 대상이기 전에 성육신적 참여를 통해 먼저 공감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비통과 고통은 연구 대상이기 이전에 나눔과 공감의 대상이다.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욥기』 김회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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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의와 악이 횡행할 때, 하나님은 이미 떠나시고 안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불의와 악을 보시는 순간 즉각 처단하신다고 전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즉각 심판하신다면 우리 중에 살아남을 자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유예하고 “그들의 피 흘림 당한 것을 갚아 주지 아니하였으나” 마지막 심판과 회복의 날에 “이제는 내가 갚아 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재난, 다시 하나님 나라』 김형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