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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자세

6시 30분에 깨워주세요~ 하지만 그 시간에 일어나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공허한 울림이 될 때가 너무 많습니다.(이건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 ) 사춘기 자녀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란 너무 어렵지만 그럼에도 성경에는 이러한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에 근거해 자녀 양육의 길을 찾길 원합니다.~ 
많은 경험을 통해 청소년기의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자세에 상당한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는 자녀들의 어린 시절 예쁘고 순종적이고 유순한 모습에 대한 기억과 기대로만 자녀들을 양육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녀들은 자라야 한다. 어린아이에서 청소년으로, 그리고 성인으로 자라가야 한다. 발달과업에서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변모하는 다양한 모습들에 대한 정보를 주고 있다.

부모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사고 안에서만 자녀들이 자라기를 바란다. 그래서 불안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부모들은 환경과 주변 친구들 바꾸어가면서 자녀들을 그로부터 차단하고 오로지 기독교 문화 안에 가두어두려고 한다.

모든 것은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예수님의 제자로 복음을 증거하기를 바라면서도, 자기 자녀는 세상에 한 발짝이라도 들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청소년 시기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이다. 신체의 구성이 완전히 바뀌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시기이다. 목소리, 피부, 신장, 외모 등 모든 부분에 있어서 낯설 정도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그런 변화를 부모는 싫어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사춘기니까 말이다.

그러면 정서와 영적인 사고방식을 비롯한 내면의 변화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동안 부모의 말씀만 듣고 부모가 이해하는 방식대로 이해하던 모든 정보와 생각들이 새롭게 정립되는 시기이다. 그래서 마치 신앙에 회의를 품는 듯 질문하고 반문하고 의심한다. 부모는 이 시기를 보내는 자녀들을 보면서 불안해하기보다 더 따뜻하게 품고 이해하고 큰 그늘이 되어주어야 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시 128:3

성경의 기록처럼 자녀들은 어린 감람나무와 같다. 어린 감람나무는 성장이 느린 편이어서 나무를 심으면 빨라도 7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고 제대로 수확하려면 20년이 지나야 한다. 그리고 100년을 넘어 수백 년까지 수명이 유지되는 나무다. 가정에서 자녀는 느리게 자라서 오랫동안 열매 맺는 감람나무와 같다.

그러므로 지금의 자녀들을 보면서 미래를 예단하기보다 자녀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면 된다. 언젠가는 크게 자라 그늘이 되고 열매를 맺게 된다. 그래서 어려서 말씀을 심어준 자녀들은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싹이 날 때까지 사춘기 기간 동안 부모들이 기다려주고 지켜봐주고 지지해주도록 권면한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누가복음 15장에서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갈 때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보도록 설명해준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의 그릇된 판단도 존중한다. 아들을 직접 키워온 아버지가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아 나가서 곧장 망하리라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아버지는 아들이 망할 줄 알았을 것이다.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나눠준 가장 소중한 재산은 탕자인 아들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불어넣어준 사랑의 용기였을 것이다. 아들은 망할 수 있어도 기도하는 아버지는 망하지 않고 늘 든든한 뒷배로 남아 있으며 언제든지 돌아와도 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탕자가 모든 것을 탕진하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을 때 마지막으로 남은 유일한 희망이 아버지의 품이다.

오늘날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최후의 보루가 되어서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부모는 그 아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도피성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춘기 자녀들과 최대한 갈등과 상처를 서로 주지 않도록 시간과 공간을 두도록 지도한다.

어린아이들은 부모를 한시도 떠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사춘기 청소년들은 또래와 친구, 세상으로 거침없이 달려가는 브레이크 없는 전차와도 같다.

그때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돌아올 곳이 가정이며 집이 되어주도록 가정은 사춘기 자녀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고 수용하고 용서하는 공간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에게 징검다리 역할을 충분히 해주어야 한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또래를 만들어주고, 놀거리를 만들어주고 교회에서 사춘기 청소년들의 응어리가 해소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교회는 사춘기 청소년들의 거룩한 놀이터가 되어주어야 한다.
<롬팔이팔> 한창수 p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