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신약 시대에는 이를 ‘에클레시아’(ekklesia)라고 불렀다. 대중 속에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이었다. 교회는 예배당, 즉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예배당도 중요하지만 예배당이 곧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란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주(主)로 믿고 고백하며 그에게 충성할 것을 다짐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정의는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큰 예배당을 건축한다고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믿음의 공동체를 형성할 때 좋은 교회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교회 건축은 계속된다
때때로 우리는 이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훌륭한 예배당을 건축하는 일에는 생명을 걸면서도, 정작 더 중요한 사명인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에는 등한히 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훌륭한 예배당을 건축하는 일도 중요하다.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해 필요한 좋은 건물을 갖는 일도 중요한 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조건 예배당 건축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도 성경적인 것은 아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해 어떻게 최선을 다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와 같은 모습에서 우리는 저들의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러므로 예배당 건축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당 건축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때때로 예배당을 건축하면서 교회의 좀 더 중요한 사명을 뒤로하고 소홀히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렇게 되면 예배당을 건축하다가 교회를 무너트리는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설마 그렇겠는가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실제로 그런 교회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큰 예배당을 건축하다가 교회가 약해지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한 정의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정확하지 않을 때는 커다란 예배당에 속아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믿고 고백하는 믿음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섬기던 당시, 동안교회도 큰 예배당을 건축했다. 건평 3,300평 규모로 약 1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큰 공사였다. 교회 건축을 앞두고 나는 몇 번에 걸쳐서 교회 건축에 관한 설교를 했다. 그 첫 번째 설교가 교회 건축은 교회의 제일가는 사명이 아니라는 내용의 설교였다.
설교를 들은 교인들이 웃으면서 “교회를 짓자는 겁니까, 말자는 겁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짓자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교회 건축이 교회의 제일가는 사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만 제대로 된 교회를 건축할 수 있다고 대답해주었다.
교회를 건축하는 동안에도 교육과 선교와 구제를 등한히 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애를 많이 썼다. 교회 건축 중에 교회 밖에서 시행된 예산을 계산해보니 약 20억 원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물론 많이 힘들었다. 그러나 그래야만 단순히 예배당 건축에서 끝나지 않고 진정한 교회의 건축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부러 사서 한 고생이나 마찬가지였다. 힘은 들었지만 그것 때문에 결과적으로 건강한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아름다운 예배당을 건축했다는 것도 감사하지만, 그 예배당을 건축하는 동안 아름다운 교회를 잊지 않았다는 것이 나로서는 더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교회 청년들이 세배를 와서, 목회하면서 가장 기뻤던 때가 언제였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내가 쉽게 대답하지 못하자 한 청년이 예배당을 완공했을 때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나는 그 청년에게 “물론 예배당을 완공했을 때도 말로 다할 수 없이 기뻤지만 나는 아직 ‘교회 건축’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해주었다. 눈에 보이는 예배당 건축은 끝났지만 좀 더 중요한 교회는 아직도 건축 중이라고 생각했다.
예배당 건축 때보다 더 많은 정성과 기도로 정말 좋은 교회를 건축해가기 위해 나는 평생을 수고하고자 했다. 교회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바른 신앙생활과 목회생활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예배당(건물)을 교회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반석 위에 세운 교회
공부를 하든지 운동을 하든지, 그것을 끝까지 잘하려고 하면 무엇보다 기초를 튼튼히 해야만 한다.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공부도 끝까지 잘할 수 없고 운동도 끝까지 잘할 수 없다. 집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다. 집을 아름답고 튼튼하게 지으려면 보이지 않는 기초를 튼튼히 해야만 한다. 기초가 튼튼해야 단단하고 아름다운 집을 마음껏 지을 수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훌륭하고 아름다운 교회, 건강한 교회를 이루려면 무엇보다 교회의 기초가 튼튼해야만 한다. 그 교회의 기초가 무엇이냐에 따라, 다시 말해서 교회를 무엇 위에 세우느냐에 따라서 교회 성숙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도 지혜로운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다고 말씀하셨다. 반석 위에 세운 집과 모래 위에 세운 집이 있듯이 교회도 반석 위에 세운 교회와 모래 위에 세운 교회가 있다. 반석 위에 세운 교회는 세태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모래 위에 세운 교회는 그렇지 않다. 세월이 좋을 때는 부흥하고 성장하는 듯하다가 세월이 조금만 어려워지면 금세 그 영향을 받아 무너지고 쓰러지고 만다.
한국교회는 1970,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성장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갑자기 정체기를 맞았고, 짧은 시간의 침체기를 거쳐 쇠퇴기에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우려할 만큼 교회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은 그 이유를 세상과 시류의 변화에서 찾으려고 한다. 예를 들어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교회는 자연히 성장을 멈춘다는 식이다. 그들은 구체적으로 교회가 성장을 멈추는 시점이 국민소득 7천 불에서 만 불 사이라고 제시하기도 했다.
물론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가 성장을 멈추고 정체와 침체를 거듭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교회의 기초가 약하다는 것이다. 기초가 약하기 때문에 조금만 바람이 불고 비가 와도 곧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 세월을 탓하기 전에 교회는 그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교회가 정신을 차리고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 노력하고 기도한다면, 부흥하고 성장하는 훌륭하고 튼튼한 교회를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한국교회는 우리 교회가 모래 위에 세운 교회가 아닌가 반성해보고, 주(主)의 몸된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우기 위해 수고하고 노력하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기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하셨다. 제자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고 대답했다. 비슷한 대답이기는 했지만 정답은 아니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다.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다. 정답이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그 신앙고백을 칭찬하시며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란 이름의 뜻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반석’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름을 생각하시면서 그와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베드로라는 사람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베드로의 베드로다운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반석’이란 베드로가 아니라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말한다.
교회의 기초는 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처럼 철저하고도 정확한 신앙고백 위에 세워져야만 한다. 교회의 구성원인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과 교회의 주(主)로 인정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고백할 때, 그 교회는 반석 위에 세운 교회가 된다.
오늘날 많은 교인에게 이러한 분명한 신앙고백이 부족하다. 대부분의 교인에게 하나님은 실제로 저들의 주(主)가 아니시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주라고 고백하지만, 실제 저들의 삶에서 그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있지만, 하나님은 실제로 저들 교회의 주인이 아니시다. 입으로는 하나님이 교회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목사와 장로 같은 사람들이 사사롭게 교회의 주인 노릇을 하는 교회가 얼마나 많은가!
교회가 가난하고 어려웠던 예전에는 교회의 주인 노릇을 하려고 드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가난하고 어려운 교회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교회의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좀처럼 교회의 주인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교회의 주인 노릇을 한다는 것은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요즘 교회가 성장하고 부유해지면서부터 부쩍 교회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크고 부유한 교회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겠다는 뜻이 아니라 면류관을 쓰겠다는 뜻이다.
교회가 성장하면서부터 오히려 교회는 약해지고 있다. 왜냐하면 교회가 성장하면서 하나님이 교회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사람이 교회의 주인이 되는 일이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사람이 주인이 되고, 돈과 명예와 세상적인 권력과 지위가 교회의 실제적인 기초가 되면서, 인간적인 방법과 정치적인 수단으로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풍조가 생겼고, 세상에는 이런 교회가 꽤 많아졌다. 그러나 이런 교회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잠시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 같다가도 외우(外憂)와 내환(內患)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은 약해져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
바른 신앙고백으로
교회가 가난하고 약할 때는 오히려 교회의 기초가 튼튼할 수 있어서 별 문제가 없다. 그래서 교회는 성장하고 발전할 여지를 갖게 된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할 때는 오히려 교회의 기초, 즉 하나님이 교회의 주인이시라는 신앙고백이 약해지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발전하고 성장할 때 오히려 위험하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가 바로 그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고 할 수 있다.
기초가 튼튼한 교회가 좋은 교회다. 그런 교회는 계속 부흥할 수 있으며 외우와 내환에도 끄떡없이 발전할 수 있다. 교회의 기초는 “주(主)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신앙고백이어야 한다. 교회의 기초는 돈이 될 수 없고 사람이 될 수도 없다. 인간적인 수단이나 방법도 교회의 기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돈과 사람과 인간적인 지혜는 믿음의 기초 위에 세워질 때만 가치가 있고 소용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하다. 믿음의 기초가 없는 돈과 사람과 지혜는 약한 데서 끝나지 않으며 악한 것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자신과 교회의 주(主)로 고백하는 바른 신앙고백으로 교회의 기초를 삼고, 세상적인 수단과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과 법도로 바른 교회 정치를 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고 건강한 교회이자 아름다운 교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