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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면 구원받나요? :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 - 김동호 크리스천 베이직

성경의 가르침은 구원은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구원을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만 얻는다고 하면, 기독교를 비도덕적이고 수준이 낮은 종교가 아닌가 의심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행함을 가치 있고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기독교에서도 행함을 중히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행함을 구원과 연결시키지는 않으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행함을 요구하고 또 가르친다. 그러나 행함으로 자식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행함이 어느 수준 이상이면 자식으로 인정하고, 행함이 어느 수준 이하로 내려가게 되면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물론 행함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자식과 부모 사이의 관계를 맺고 끊는 데까지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행함의 기준으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결정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참부모가 아닐 것이다.

행함이냐 믿음이냐?

어떤 아이가 물에 빠졌다고 하자. 아버지에게 건져달라고 소리치는데, 그와 같은 다급한 기회를 이용하여 아버지가 아이에게 중요한 조건 열 가지를 제시하면서 그 조건을 지키겠다고 약속하면 건져주고, 그렇지 않으면 건져주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아이가 지키겠다고 약속하고 건짐을 받은 후에라도 아이는 그 아버지를 진짜 자기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진짜 아버지는 그와 같은 상황에서 조건을 내걸고 아이의 구원을 흥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그냥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저들을 구원해주셨다. 물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이라는 율법을 주셨지만, 그것을 출애굽 한 후 시내산에서 주셨지 출애굽 전 애굽 땅에서 주시지는 않았다. 십계명을 출애굽 전에 애굽 땅에서 주셨느냐, 아니면 출애굽 후 시내산에서 주셨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은 과연 우리에게 누구이신가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계명과 율법을 지키면 구원시켜주고, 그렇지 않으면 구원시켜줄 수 없다고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냥 저들을 구원해주시고, 구원하신 후 “이제 구원받았으니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뜻에서 저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시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구원을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라고 정의했을 때, 행함으로는 그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믿음으로만 회복할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조건으로 행함을 이야기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부자 관계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는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것만으로 부자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그동안 탕진한 빚의 청산을 부자 관계 회복의 조건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 죄를 회개하고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만 하면, 값없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을 얻게 된다. 하나님은 구원을 우리에게 그냥 값없이 은혜로 주신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주(主)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아멘!

율법은 X-Ray다

그렇다면 구원에서 율법의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가? 율법은 구원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 율법도 우리의 구원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성경은 율법의 기능을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하나님)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율법이 없다면 우리는 죄를 죄로 인식하거나 깨달을 수 없다.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죄를 해결할 수도 없고 그 죄에서 벗어날 수도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죄를 죄로 깨닫는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병원에 가면 병원에서는 치료부터 하지 않고 검사부터 한다.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하여 어디에 무슨 병이 있는가를 먼저 알아낸 후 치료에 들어간다. 병원이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 것은 치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사가 먼저이다. 검사를 통하여 병을 정확히 깨달아야만 정확한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죄를 치료하고 구원을 얻는 데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먼저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 깨달음으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다. 그것이 바로 율법의 기능이다.

율법은 비유하자면 마치 X-Ray와 같다. 사고로 뼈가 부러졌을 때에도 우리는 먼저 X-Ray를 찍는다. 우리는 그것을 통하여 어느 뼈가 어떤 모양으로, 그리고 얼마나 부러졌는가를 알아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X-Ray의 기능은 끝이다. X-Ray로 뼈를 붙일 수는 없다.

율법은 X-Ray와 같다. 율법으로 우리 죄를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지만, 죄를 치료하고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X-Ray로 뼈를 붙인다는 말과 같다. 구원을 얻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와 구주로 인정하고 영접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와 구주로 인정하고 영접하려면, 먼저 자신이 스스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만일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주와 구주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주와 구주라는 사실을 모르면 그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인임을 정확히 아는 것이 구원에서 얼마나 중요한 단계인지 모른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단계를 위하여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이다. 율법이 없었다면 우리는 우리가 죄인인 줄 몰랐을 것이고, 우리가 죄인인 줄 몰랐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주와 구주이신 줄도 몰랐을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와 구주이신 것을 몰랐다면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을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라고 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갈 3:24). 아멘.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우리의 행함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다. 만일 구원이 우리의 행함으로 말미암았다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기보다는 우리의 자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원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요 믿음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다. 하나님의 은혜에 오직 감사할 것뿐이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같은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고 가르쳤다. 그래서 자신의 행위를 드러내려 하였고 자연 그것을 자랑했다. 그 때문에 저들은 하나님의 은혜와는 전혀 관계없는 엉뚱한 종교인이 되었다. 죄를 짓고 죽게 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서도 그 은혜를 모르고 자신의 보잘것없는 행위를 자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그리고 얼마나 악한 일인가?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롬 3:27).

종교개혁자들은 종교개혁을 하면서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를 부르짖었다. ‘오직 믿음’에서만 ‘오직 은혜’가 나올 수 있다. 은혜 충만한 신앙생활을 위하여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도리를 먼저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구원을 행함으로 얻는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아니시다. 그러나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율법을 지키려고 힘쓰지 않으면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달을 수가 없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면 예수님이 우리의 주와 구주시라는 믿음에 이를 수 없다.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다.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나 율법이 있어서 궁극적으로 믿음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율법은 우리가 죄인인 것을 가르쳐준다. 그러나 그것이 죄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거기에 우리의 절망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값없이 우리를 구해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값으로 지불하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셨다. 오직 이것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기 때문에 구원은 오직 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