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ㆍ문화
갓피플스토리

생각없이 정치인이 된 남자. 실력과 신앙을 갖춘 위대한 정치인으로 거듭나다 ✨윌리엄 윌버포스 2부 #갓피플스토리

(상단의 플레이 버튼을 눌러서 영상으로도 보세요^^)

1784년 선배 아이작 밀너와 유럽 대륙 여행을 하게 된 윌버포스. 그는 밀너와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게 됩니다. 간증 거리가 될만한 사건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 여행 이후 윌버포스는 방탕했던 생활을 뉘우칩니다. 그는 영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술과 도박을 끊습니다. 완전한 기독교인으로 거듭난 그는 아예 성직자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윌버포스의 동료들은 정치에서 기독교의 가르침을 실천해보라고 그에게 권유합니다. 이렇게 위대한 정치가 윌버포스의 인생 제2막이 시작됩니다. 윌버포스는 정치를 통해

복음적 사명을 이루려고 했고, 그의 가장 큰 목표는 노예제 폐지였습니다. 17세기~18세기 영국은 세계 최대의 노예무역국이었습니다. 노예무역을 폐지하자는 말은, 지금으로 치면 비중이 큰 IT산업을 포기하자는 말과 같았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납치당한 흑인들은 짐승 같은 대우를 받았고, 대양을 건너는 동안 많은 수가 죽었습니다. 이러한 참상을 본 윌버포스는 오크나무 아래에서 피트와 논의하다 노예제도를 폐지할 것을 결심합니다. 윌버포스는 후에 '클래펌 파'라고 불리게 될 각 분야의 동지들을 규합합니다.

어벤져스만큼 막강한 실력을 갖춘 클래펌파는 주위의 비난과 생명의 위협에도 노예제 폐지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갑니다. 노예제의 온갖 참상을 하원에 고발하여 양심에 호소하는 한편, 노예제 폐지가 오히려 경제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실용적인 접근도 병행합니다. 이는 기득권 세력인 동료의원들의 입장을 파악하여 세운 지혜로운 전력이었죠. 또한 흑인은 열등하다는 당시의 인식을 뒤집기 위해 거대한 프로젝트를 준비합니다. 바로 해방 노예들이 스스로 운영하는 도시 '프리타운'의 건설이었습니다.

이런 다양한 노력에도 노예제폐지는 당시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목표였습니다. 기득권의 이익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노예무역 폐지 법안은 11번이나 좌절을 겪습니다. 오랜 투쟁으로 지친 윌버포스는 척추 장애와 온갖 질병에 시달리며 건강이 악화되었고, 노예무역 폐지를 위해 자신의 사재를 아낌없이 내놓은 덕분에 그의 재산도 바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인맥과 재산,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소명에 아낌없이 던진 결과는 결국 결실을 맺습니다.

1807년 노예무역 폐지 법안이 통과되었고, 1833년에는 노예제도 자체가 폐지됩니다. 윌버포스는 병상에 누워 이 소식을 듣고 사흘 뒤에 기쁨 가운데 세상을 떠났습니다. 윌버포스와 클래펌파가 이룬 업적은 노예제도 폐지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방만했던 영국 사회의 도덕성 회복을 위해 그는 다양한 시민단체를 설립하였습니다. 성서 읽기 운동, 주일학교 보급 운동으로 문맹률을 낮췄으며, 술집의 24시간 영업, 관직 매매, 아동노동을 폐지하여 사회를 개혁하였습니다.

윌버포스는 영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신앙인으로 남아있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나누지 못하여, 주님 앞에서 돌아선 성경 속 부자 청년을 기억하시나요? 여기 또 다른 부자 청년 윌버포스는 비슷한 갈림길에서 주님께 모든 것을 던지기로 결심했습니다. 부잣집 망나니 도련님이 주님과 동행했고, 그 결과 이 땅에 많은 것을 바로잡았습니다. 윌버포스만큼 극적이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매일같이 이런 갈림길 앞에 섭니다. 주님의 길과 나의 길. 오늘의 갈림길에서 주님 쪽으로 살짝 치우쳐 걸어가 보면 어떨까요? 그 길은 우리 생각보다 험하진 않을 겁니다. 주님이 먼저 걸어가신 길이니까요.


▶윌버포스 관련도서 https://gpf.kr/TNU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