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방해하는 언어의 태도를 버려라
#01 말에서 이기려고 하지 말라
대화에서 제일 나쁜 태도다. 중요하지 않은 사항을 갖고 굳이 내가 옳다고 우겨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화에서 이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상대방의 마음을 잃고, 나는 강 퍅한 사람이 될 뿐이다. “내 말이 맞잖아!”, “네가 몰라서 그래”, “아, 시끄러워. 내 말대로 해!” 등 생각만 해도 끔찍한 말들이다.
#02 내 편, 네 편을 가르지 말라
신앙이든, 정치든, 어떤 의견이든 편을 나눠서 이야기하는 것 은 옹졸하다. 한쪽을 심하게 흉보면서 좋은 사람이 되기는 어렵 다. 언어의 품격만 떨어뜨릴 뿐이다. 세 사람만 모이면 내 말에 동조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가르는 버릇을 가진 사 람은 정말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03 숨은 의도를 갖고 말하지 말라
사람을 떠보려는 의도를 갖고 말하는 것은 굉장한 실례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유도 심문을 한다. 혹은 궁금증을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은근히 떠보곤 한다. 이는 상대방을 멸시하는 태도다. 상대방과 삶을 나누기보다 가십거리를 만들려는 사람의 경우 주로 이런 태도를 취한다. 무엇을 얻어내려는 태도로는 상대방 의 애환에 진심 어린 공감을 할 수 없다. 기본적인 태도가 바뀌어야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04 말에 욕심을 내지 말라
말을 많이 하고 싶어서 안달 내지 말라. 말을 많이 할수록 실수 가 많다. 그리고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만 말하는 습관 은 아주 많은 성도가 저지르는 잘못이다. 기본적으로 가르치려 는 습관, 내 말이 맞다고 여기는 태도, 내가 주도하려는 마음이 앞설 때 주로 말 욕심을 내게 된다. 주인공이 되려는 욕망을 버려라. 분위기를 주도하려고 대화하 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나누기 위해 대화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05 다 아는 척하지 말라
이 세상에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 관적으로 마치 ‘나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대화하다가 걸핏하면 “나는 알고 있었 는데, 너는 몰랐어?”라며 추임새를 붙인다. 그러면 상대방은 대 화를 멈추게 된다. 혹시 나도 모르게 이런 추임새를 넣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라. 상대를 매우 기분 상하게 하는 습관이다.
복음 밖의 사람들을 위한 언어의 품격
#06 일상의 언어를 사용하라.
새가족부 사역을 10여 년 하면서 누누이 강조하는 부분이다. 일단 종교적인 언어를 버려야 한다. 이런 언어는 교회에서도 별 로 바람직하지 않다. 언어는 늘 일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언어 가 내 삶이기 때문이다. 이미 종교적인 언어를 쓰고 있다면 일상 이 신앙의 영역과 구분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복음을 일상의 언어로 바꾸고, 종교적인 어려운 말은 쉬운 말 로 바꿔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쉬운 말, 간결한 말, 좋은 단 어를 골라 쓰는 습관 또한 하나님을 위한 헌신임을 기억하자.
#07 틀렸다는 말을 하지 말라
사람들은 각자 삶의 경험을 토대로 나름의 말을 한다. 그래서 “아이, 그건 좀 아니지. 네가 틀렸어”라는 말을 은연중에 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입을 닫아버리게 만든다. 영적으로는 아직 많은 것을 모른다 해도 그들은 이미 성인이고 사회인이다. 그들의 삶의 모든 경험을 단번에 무시하는 일은 결례다. 정말 틀린 말을 하더라도 “아, 그렇게 생각하는군요”라고 반응한 후 시간이 지나서 기회가 될 때 다시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이 좋다.
#08 상대방의 신호에 민감하라
만약 상대가 시계를 보거나 하품을 한다면 지금의 대화가 지루하다는 의미다. 그러면 멈춰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늘 대화에서 결과를 얻으려고 조급해하다가 관계를 해친다. 인대인은 관계이고, 여정이고, 동행이다. 긍정적인 답을 받아 내려고 대화하는 것이 아니다. 조급할 필요가 없다. 친구가 되어 주고, 서로의 삶을 통해 배움을 주고받는 좋은 동행이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상대가 자꾸 화제를 바꾸거나 들썩거린다면 무언가 불편해하고 있다는 것임을 눈치채야 한다. 집에 가봐야 하는지, 직장에 들어가야 하는지, 혹은 속이 불편한지 등을 살피고 배려하는 마음과 자세를 가질 때 만남은 늘 즐거울 것이다.
#09 그들의 부정적인 태도를 인정하라
신앙과 복음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일지라도 흔쾌히 인 정해줄 필요가 있다. 대학에서 새내기들을 대상으로 기독교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무교이거나 타 종교를 가진 학생들이 의도적으로 듣기 싫다는 내색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툭 터 놓고 이야기했다.
지금부터 무제한 시간을 줄 테니 교회에 대해 비판해 보라고 했다. 그러자 봇물 터지듯 20분이 넘도록 이러저러한 비판을 쏟아냈다. 정말 힘들었다. 그렇게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 나는 그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 했다. “너희 말이 모두 맞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하지만 다 우리 가 한 잘못이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니다. 부디 오해하지 말아주기를 바란다.” 이후 학생들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그들의 불편한 마음, 불만스러운 생각을 인정해주자 오히려 그 들의 마음이 움직였던 것이다.
#10 내 삶의 이야기로 대화하라
이론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자녀에게 잘해주십시오. 자녀를 사랑으로 대하십시오”라고 1시간 넘도록 강의한다고 해서 자녀를 사랑으로 대하게 되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실제 경험 을 들어야 감동을 받고 결단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이론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이야기’로 변화된 다. 삶의 이야기를 들어야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게 된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복음을 전할 때 ‘복음’ 이라는 단어를 들이대기보다 내 삶에 녹아내린 하나님의 사랑을 나의 언어로 이야기할 때 최고의 나눔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 인생의 이야기다. 삶의 나눔이고 애환에 대한 위로다. ‘나의’ 이야기와 ‘예수님의’ 이야기를 넘치게 가진 내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품고 그 이야 기를 나눌 때 ‘우리의’ 이야기가 풍성해질 것이다.
출처 : 인대인 양육 시리즈 세트 (전7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