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직 인간만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생각을 통해서 많은 일들을 성취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됨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잠 23:7
생각이 사람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외모가 바깥주인이라면 생각은 안주인입니다. 바깥주인을 움직이는 실세입니다. 그래서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외모가 달라집니다. 기쁜 생각을 하면 얼굴에 즐거운 표정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반대로 슬픈 생각을 하면 얼굴에 수심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생각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예언자 엘리야가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 후에 엘리사는 엘리야에 이어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엘리사는 주변국의 전쟁과 흥망이 교차하는 숨 막히는 국제 정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엘리사가 인생을 마감할 때가 되자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는 그를 방문했습니다. 요아스는 눈물을 글썽이며 엘리사에게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 왕하 13:14
왕이 엘리사를 ‘내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이해가 되는데,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부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병거와 마병은 최신 무기로 나라를 가장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군사력이었습니다. 엘리사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으로 부른 이유는 엘리사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는 뜻입니다. 엘리사는 위기에 처한 나라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러 차례 구했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사의 죽음은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었습니다.
엘리사는 죽음의 문턱에서 요아스 왕에게 활과 화살을 들라고 했습니다. 왕이 활을 잡자 엘리사는 활을 잡은 왕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었습니다. 그리고 동편 창을 열라고 한 뒤에 화살을 쏘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 의미가 열왕기하 13장 17절에 나옵니다.
이르되 동쪽 창을 여소서 하여 곧 열매 엘리사가 이르되 쏘소서 하는지라 곧 쏘매 엘리사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하니라 - 왕하 13:17
아람이라는 나라는 오늘날 시리아를 말합니다. 이스라엘과 시리아는 한 번도 좋은 관계를 맺은 적이 없는 앙숙이었습니다. 엘리사는 아람을 향해 활을 쏘는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하고 아람을 치실 것이라는 메시지를 왕에게 전달한 것입니다. 엘리사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왕하 13:18,19
엘리사가 왕에게 땅을 치라고 말했습니다. 땅을 치는 행동은 아람을 전쟁에서 무찌르는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땅을 세 번만 쳤습니다. 왕의 행동에 엘리사는 몹시 화가 났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아람은 북이스라엘을 침략해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포로로 잡아간 원수의 나라 아닙니까? 그러니 그 나라를 응징해야 마땅합니다. 당연히 더 많이 쳐야 합니다. 그것이 엘리사의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왕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소극적인 생각과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우리의 미래를 닫는다는 것입니다. 왕이 평소에 나라의 안위를 생각하고 발등의 불인 아람의 문제를 인식했다면 어땠을까요? 동쪽 창문을 열고 활을 쏘는 것이 아람을 진멸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다면 그는 분명히 땅을 열심히 두드렸을 것입니다. 그의 생각 없는 행동이 그와 나라의 미래를 닫아버린 것입니다.
또한 이 상징 행위들은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예정해놓으셨다고 해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이미 아람을 이스라엘에게 패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그런데 왕이 땅을 얼마나 치느냐에 따라 승패가 달라집니다. 왕이 땅을 세 번 치면 세 번만 전쟁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왕이 땅을 열 번 치면 전쟁에서 열 번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예정하셨을지라도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해가시지만 우리에게 여전히 ‘자유 의지’라는 것을 주셔서 우리가 생각하고 선택하게 하십니다. 우리 스스로 바른 생각을 하고 거룩한 일에 헌신함으로 우리의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입니다.
이 이야기는 생각 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가를 보여줍니다. 요아스 왕은 국가의 대사를 결정하는 왕의 신분에 맞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는 곧 소극적인 태도로 이어졌고, 소극적인 태도는 소극적인 미래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사실 많은 부분에서 요아스 왕과 같습니다. 우리도 생각 없이 살 때가 많습니다.
생각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생각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씨앗입니다.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은 우리를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으로 만듭니다. 또 그런 결과에 익숙해져서 주눅이 든 채 살아가게 합니다.
생각은 미래를 향한 문과 같습니다. 생각이 닫히면 미래가 닫히고 생각이 열리면 미래가 열립니다. 미래를 향한 생각은 오늘의 고난에 침몰당하지 않게 우리를 지켜줍니다. 고난 속에서도 미래의 행복을 그리며 소망의 노를 열심히 젓게 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품는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줍니다. 또 그 생각이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가르쳐줍니다. 욥기에 보면 의미심장한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 욥 3:25
욥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가운데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을 느낀 모양입니다. ‘이거, 좀 불안한데. 이 많은 재산이 하루아침에 다 없어지지는 않을까? 몸이 아프면 또 어쩌지?’ 성경에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욥이 쓸데없이 걱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염려와 걱정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그가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이토록 무섭습니다. 생각대로 된 것입니다. 그 생각이 이루어진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니 부정적인 생각을 거두고 그 생각을 긍정적이고 소망에 찬 생각으로 바꿔보십시오.
하지만 우리의 대단한 생각과 판단, 경험들이 자주 오류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가 헤아릴 수도 없고 분별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께 마음을 드리며 주님 마음 구하기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지혜의 부요 앞에서 우리는 아무 주장도 할 수 없습니다(롬 11:33, 34).
우리의 생각과 판단, 경험보다 더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여러분의 일생을 맡기기 바랍니다. 새로운 차원의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주장하지 말고 그 생각까지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 말씀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 로마서 12장 3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 히브리서 4장 12절
† 기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도록 창조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판단은 많은 오류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부어주신 지혜가 내 안에 가득하길 원합니다. 또한 긍정적이고 소망적인 생각이 내 안에 가득하길 원합니다. 내 생각과 판단, 경험보다 위대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나의 모든 것을 맡기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근거로 삼는다면 우리는 결코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읽고 그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고 되기기로 결단합시다. 그때 그 말씀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말씀대로 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