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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다와 논다의 사이에서 : 안식일과 인간 문화 – 김동호 크리스천 베이직

하나님은 이 우주 만물을 엿새 동안 창조하셨다. 그리고 이레째 되는 날 안식하셨다. 다시 말해서 쉬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날을 특별히 성별하여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셨다. 하나님은 안식의 법을 세우시고 우리에게 그것을 계명으로 주시고 지키라 말씀하셨다.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10,11).

안식의 법을 세우신 하나님

이와 같은 안식일의 법은 안식년의 법으로 이어지고, 안식년의 법은 희년의 법으로 발전한다. 일주일의 하루는 구별하여 안식일로 지키고 칠 년 중의 한 해는 성별하여 안식년으로 지키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후 오십 년이 되는 해를 희년이라 하여 49년 동안의 모든 삶을 원점으로 돌리고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해의 원점으로 삼게 하셨다. 우리는 그와 같은 안식년과 희년에 대한 사실을 레위기 25장 1-17절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가꾸지 아니한 포도나무가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류하는 자들과 네 가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출로 먹을 것을 삼을지니라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갈지라 네 이웃에게 팔든지 네 이웃의 손에서 사거든 너희 각 사람은 그의 형제를 속이지 말라 그 희년 후의 연수를 따라서 너는 이웃에게서 살 것이요 그도 소출을 얻을 연수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인즉 연수가 많으면 너는 그것의 값을 많이 매기고 연수가 적으면 너는 그것의 값을 적게 매길지니 곧 그가 소출의 다소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이라 너희 각 사람은 자기 이웃을 속이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우리는 이 하나님이 정해주신 안식일과 안식년, 그리고 희년의 법과 정신을 지켜나가기 위하여 힘쓰고 노력해야 한다. 요즘 우리는 이 안식의 법을 별로 중히 여기지 않고, 지켜도 되고 지키지 않아도 되는 법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그렇지 않다. 최선을 다하여 그 안식의 법과 정신을 지켜나가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열심히 일한 자가 잘 쉰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안식의 법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의미와 정신이 있다.

첫째, 엿새 동안 힘써 일하라는 것이다.

일주일의 하루는 꼭 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하여 엿새 동안 힘써 일하라는 정신이 안식의 법에 들어 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만이 안식할 수 있다. 엿새 동안 빈둥거리며 꾀부리고 요령을 피우며 사는 사람은 안식의 축복을 누릴 수 없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에게만 안식이 복이 된다. 우리 기독교는 열심히 일하고 노동하는 것을 귀히 여기는 종교이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라고 말씀하시며,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것을 축복이라고(시 128:2) 말씀하신다.

쉴 줄 아는 자만이 ‘도끼날’을 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엿새 동안 최선을 다하여 일해야 한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기독교인들은 성실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어야만 한다. 엿새 동안 힘써 일하는 것이 안식의 법이 내포하고 있는 중요한 정신이다. 세상 사람들은 일한 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아주 민감하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받은 만큼 일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민감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일한 만큼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임에 틀림이 없지만, 받은 만큼 정당하게 일하지 않고 요령을 피우는 것은 더 큰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아멘.

둘째, 욕심부리지 말고 쉬라는 것이다.

나태하고 게으른 사람에게도 안식이 없지만, 욕심이 많은 사람에게도 안식이 없다. 지나친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하루분의 소득과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해 쉴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일주일 중 하루를 쉬라고 말씀하신 것에는 무슨 일을 할 때 그것을 인간적인 야망과 욕심에 사로잡혀 하지 말라는 중요한 정신과 교훈이 담겨 있다. 욕심과 인간적인 야망에 사로잡혀서 일하는 사람은 성실한 사람은 혹 될 수 있을는지 모르나 훌륭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성실한 사람이라고 해서 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실한 사람 중에 얼마나 악하고 나쁜 사람들이 많은지 모른다. 인간적인 야망을 가지고 그 야망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절대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없다. 인간적인 야망과 욕심을 버리고도 성실히 일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의미의 훌륭한 인물과 일꾼이 될 수 있다.

소득의 십 분의 일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포기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일주일 중의 하루를 하나님을 위하여 드릴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의미의 물질과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버릴 수 있는 사람만이 잡을 수 있다. 버릴 수 없는 사람이 잡으면 자신과 세상에 큰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버릴 수 있는 사람에게 물질과 시간을 맡기신다. 하나님은 그분 소유의 물질과 시간을 맡기실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시기 위하여 물질은 열의 하나를 버리라 하셨고, 시간은 일주일의 하루를 버리라 하신 것이다.

셋째, 언제나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심을 알라는 것이다.

사람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한다.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과 있으나 마나 한 사람, 그리고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삶의 모습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우리의 인생을 끝마치게 되면, 정작 우리가 없어지게 될 때 우리가 섬기던 교회와 직장과 가정 모두가 다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된 후에는 다시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힘써야 한다. 있으나 마나 한 사람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 이전 단계의 사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 이후 단계의 사람이다.

우리가 열심히 살아서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중요하지만, 너무 열심히 살아 하나님의 자리까지 차지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없어도 자기만 있으면 모든 일이 다 되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면 큰일이다. 주위의 사람들도 하나님보다 그 사람을 더 의지하여, ‘하나님은 안 계셔도 상관없지만 아무개는 없어서는 안 된다’고 착각하게 되면 그것은 더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는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세상의 많은 사람이 그와 같은 오류에 빠져 있고, 그것 때문에 세상 살기가 어려워지고 힘들어지고 있다. 그것은 가정도 마찬가지고, 교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우리가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을 넘어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하여, 그리하여 진정으로 모든 삶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하여 안식일과 안식년의 법을 정하셨다.

나는 이 글을 안식년을 보내는 가운데 썼다. 2년에 걸친 교회 건축 공사 중 마지막 6개월을 남겨놓은 가장 힘들고도 중요한 시점에 담임목사가 안식년을 보낸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많은 생각과 고민 끝에 안식년을 가지기로 결정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교회는 담임목사 때문에 움직여지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움직여지는 곳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또 연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내가 시무하는 교회가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래야만 나의 주가가 올라가고 나의 권한이 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지 않고 내가 주인이 되고 만다. 그것은 나를 위해서도 좋지 않고 교회를 위해서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나는 안식년을 지키는 것을 통하여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고 싶었다.

나는 중요한 때에 안식년을 가짐으로 담임목사인 나도 좋은 목사가 되고 교회도 좀 더 건강한 교회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은 내가 교회가 어려운 때에도 자기 권리를 다 찾아 먹는다고 생각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식년을 나의 권리라고 생각하기보다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안식의 법은 우리 모두가 나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산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하여 세우신 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육 년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어먹고 살다 보면 먹고사는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기가 쉽다. 그럴 때 하나님은 한 해를 쉬라고 말씀하신다. 한 해를 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가게 되는 것을 통하여 사람들은 살고 죽는 것이 자기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안식의 법을 세우신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이다.

안식의 법을 지키면 하나님이 내 모든 삶의 주인이심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안식의 법을 지키지 않고 살게 되면 자신이 모든 삶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게 되기 쉽다. 목회도 마찬가지다. 안식년을 가지지 않고 목회를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의 주인이 되기가 쉽다. 없어서는 안 되는 목사로 굳혀져간다.

그러나 안식년을 가지게 되면 자신과 교인들이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게 된다. 자신이 없어도 된다는 것을 교인도 알게 되고 목사 자신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일 년 쉬는 동안, 교회에 대한 사적이고 인간적인 욕심도 어느 정도 맥을 끊을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심을 알게 하시려고 안식의 법을 세우셨다.

넷째, 새 힘을 얻게 하시기 위함인 것이다.

욕심만 가지고 쉬지 않고 농사를 짓게 되면, 결국 땅은 지력(地力)을 잃게 되고 빈약한 소출을 거둘 수밖에 없는 땅이 되고 말 것이다. 결국 나중에는 아무것도 소출할 수 없는 땅이 되고 말 것이다. 그것은 땅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사탄은 우리가 그렇게 소멸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래서 안식의 법을 무시하고 살도록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육 년 동안 농사를 지은 후에는 한 해 동안 땅을 내버려두어 지력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만 한다. 육 년 동안 열심히 일한 후에는 한 해 정도 푹 쉬면서 다음 육 년을 위한 계획을 세우며 그 계획을 실천하기 위한 공부를 해야만 한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셨는데, 왜 목사님은 쉬시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죽도록 충성하기 위하여 쉰다”라고 대답해주었다. 참으로 죽도록 충성하기 위하여 우리는 쉬어야 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안식의 법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두 사람이 산에 들어가 도끼로 나무를 찍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하루 여덟 시간을 쉬지 않고 나무를 찍었고, 또 한 사람은 50분 동안 일하고 10분씩은 쉬면서 일했다. 결과적으로 쉬면서 일한 사람은 쉬지 않고 일한 사람보다 한 시간 이상이나 일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무는 10분씩 쉬면서 일한 사람이 더 많이 했다. 이유는 쉬는 동안 새 힘을 얻었기 때문이고, 또 쉬는 동안 그는 도끼날을 갈았기 때문이다.

나는 교회 건축 중에 안식년을 가졌다. 예배당을 짓는 일도 중요하지만, 목사와 장로, 그리고 온 교인이 다 예배당 짓는 일에만 매달리는 것은 생산적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목회는 릴레이와 같은 것이다. 한 선수가 뛸 때 다른 선수는 쉬면서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모든 선수가 다 함께 뛴다면, 그것은 낭비이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승리할 수도 없다.

목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예배당을 건축하느라고 애쓸 때 다른 누군가는 쉬면서 다음 목회를 준비해야만 한다. 나는 안식년 동안 그것을 준비했다. 쉬는 동안 예배당 완공 후 힘 있게 뛸 수 있는 힘을 비축했다. 결과적으로 그 기간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많은 목회자가 예배당을 건축하면서 탈진하게 되는데, 그래서 건축 후의 목회가 오히려 힘이 없어지게 되는데, 나는 반대였다. 예배당 완공 후 나는 충전되어 있었다. 능력 있게 목회할 충분한 힘을 비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일성수, 주일안식

안식의 법은 하나님이 만드셨다. 이 법을 제정하신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안식의 법은 꼭 지켜야만 한다. 먼저 안식일을 구별하여 거룩히 지키도록 힘써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성수주일의 정신으로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주일 지키는 일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날은 세상의 모든 일을 쉬고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고 예배하며 하루를 쉬어야 한다.

그리고 안식년도 지켜야만 한다. 물론 사회의 일원으로 자기 혼자의 뜻대로만 살 수 없는 사람들은 안식년을 구별하여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나름대로 방법을 강구하여 그 정신을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자유로운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마음만 비울 수 있다면, 안식년 또한 지키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희년의 정신도 우리가 구현해나가야 할 것이다. 희년의 정신은 유산 안 남기기 운동이나 재산의 사회 환원이라는 방법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만일 이 세상을 떠날 때에 우리가 맡아 관리하였던 모든 것을 다시 사회에 환원하고 돌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희년의 정신을 실천하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가 그와 같은 희년의 정신을 지켜 살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훌륭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