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와 이야기하길 꺼리는 자식, 곧 영적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의 모습이 자녀 문제로 상담 온 어느 부부의 이야기에 담겨있다.
정말 살갑고 사랑스러운 딸이었어요. 그러나 언제부턴가 대화가 점점 뜸해지더니 이젠 아예 사라졌어요. 아이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더 이상 우리와 말을 섞지 않아요. 왜 그러는지 모른 채 아이를 따라다니며 계속 말을 붙였지요. 아이는 귀찮은 잔소리로만 여겼어요. 그러다 속상하면 가끔 소리까지 질렀지요.
아이는 자기 방에서 혼잣말을 쏟아놓거나 친구들하고만 이야기하지 우리와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어요. 학교나 전공 같은 중요한 선택을 두고도 우리에게 묻지 않고요. 혼자서 모두 결정하고 통보했어요. 뭔가 아쉽고 돈이 필요한 때만 한두 마디 던지고요.
아이의 표정은 '날 이해 못하는, 아니 이해하지 않는 엄마 아빠를 이해할 수 없어'였어요. 아이가 우리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걸 알아요. 때론 우리와 이야기하고 싶은 눈치도 보였지요. 그러나 '지금은 아냐. 엄마 아빠와 이야기하지 않은 지 너무 오래야. 이젠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 하는 게 눈빛에서 보였어요.
서로 원치 않는데도 우리 사이에 골이 깊어갔어요. 아이는 자기와 부모를 좀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이 책상 위에 '부모 이해하기', '십대의 갈등', '하나 된 가족', '나를 찾아가기'에 관한 책들이 놓여있었거든요. 그러나 아직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한 듯해요. 우리와 함께 이야기하면 쉽게 답을 찾을 텐데?
위 이야기에서 앞 문단은 그리스도인의 전형적 기도와 비슷하다.
대화가 아닌 독백기도, 필요할 때만 드리는 간청기도다. 뒤 문단은 말씀 연구 혹은 성경 공부 모습과 비슷하다. 둘 다 대화가 아니라 혼잣말이요 일방통행이다.
하나님과 나를 제대로 알기 위해 혼자 애쓰지만 여전히 인격적인 대화는 없다. 말씀을 따라 하나님과 대화하며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게 아니라 혼자만의 묵상이나 타인의 설명에 의지한다.
참 부모이신 하나님과 대화를 시작하면 답이 금세 나올 텐데?
기도 훈련과 말씀 연구도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가 빠졌다. 바로 하나님과 직접 나누는 인격적 대화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소통이다. 상호 대화 없이 소통이 가능한가? 말씀 연구는 하나님과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대화를 통한 인격적 가르침 없이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의 깊이에 이를 수 있을까?
말씀 연구, 묵상, 강해(講解) 설교, 주석(註釋)이 주는 유익은 분명하다. 신앙생활 초기에 하나님과 우리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고 구원의 언약을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설교와 주석을 통한 타인의 해석은 말씀의 입체적 이해를 돕는다
기도가 주는 유익은 말씀과 같이 다양하다.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하고 유익하기에 많은 설교와 책에서 폭넓게 다룬다.
그러나 말씀과 분리된 기도는 말씀으로 엮어가는 기도, 곧 인격적 대화에 비해 생생한 관심, 집중, 활기가 현저히 떨어진다. 깊은 성찰, 지혜, 기쁨, 순종도 부족하다. 이런 것이 결여된 길고 긴 기도는 율법적 노동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런 기도가 기쁨이나 휴식 없이 오래 지속될 경우 신앙적 피로가 쌓이고 육체적으로 고단해진다. 한 방향 혹은 독백(獨白)기도의 한계다. 또한 하나님 뜻과 상관없거나 반대되는 기도로 나갈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기도가 아닌 기도를 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버렸다..” 막 11:17
상거래가 진행되는 곳, 곧 강도의 소굴이 성전 뜰에만 있는 건 아니다. 기도를 드리는 우리 마음 안에도 있다. 성전에서 사람들과 상거래 하는 것을 금하셨다면 기도 안에 숨은 하나님과는 어떨까? 신앙생활에서 헌신과 거룩으로 포장된 상거래 기도가 너무나 흔하다.
'이걸 드릴 테니 저걸 꼭 주세요!'
이뿐만이 아니다. 하나님 뜻과 전혀 상관없는 탐욕에 찬 자기중심적인 기도도 많다.
반면, 말씀을 따라 주님과 나누는 인격적 대화는 매 순간 하나님의 생기가 넘친다. 기쁨, 평안, 열정, 순종으로 이어진다. 말씀기도는 샛길로 빠지기 쉬운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가는 기도, 곧 말씀의 레일을 따라가는 기도다운 기도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주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 고난을 피하고 싶어 몸부림치셨다. 그러면서도 주님은 '아버지의 뜻대로'를 외치며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음을 기억하자.
아바,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니,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막 14:36
혹 기도와 말씀이 떨어져 있어도 나름의 힘과 능력이 있다. 그러나 기도는 말씀이 곁에 있을 때, 말씀은 기도가 함께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뜻하신 원래의 강력한 힘과 계시가 주어진다.
내 맘대로 해석하지 말고
성령하나님 저를 가르쳐주세요.
기도하며 읽기
기도는 하나님 얼굴을 보기 원하게 하며, 그분의 뜻을 찾게 한다. 말씀이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그분의 얼굴과 빛을 드러내신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는다. 말씀으로 하나님은 이 땅으로 내려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신다.
말씀과 기도의 연합은 하나님과 우리의 연합과 같다. 대화식 말씀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점진적 자기 계시를 보고 듣는다.
말씀기도는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 사랑, 기쁨, 평안이 무엇인지 점점 더 새롭고 선명하게 거대한 규모로 보여준다.
† 말씀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 골로새서 4장 2절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 요한복음 17장 17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요한복음 8장 31, 32절
† 기도
주님,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 했는데 저는 하나님과 얼마나 소통했는지 이 시간 되돌아보게 됩니다. 늘 제 마음 한구석에는 참 부모이신 하나님과 대화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저 형식적인 기도만 입으로 할 때가 많았습니다. 혼자 애쓰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 하나님과 대화하고 싶습니다. 말씀을 따라 주님과 나누는 인격적 대화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아래의 글은 저자가 2007년경 보게 된 앤드류 머레이의 글입니다. 한 몸을 이뤄야 할 말씀과 기도, 앤드류 머레이의 글을 읽으며 대화식 말씀기도를 사모하는 당신이 되기 바랍니다.
기도와 하나님 말씀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기도는 말씀이 있음으로써,
말씀은 기도가 있음으로써 능력이 나타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구합니다.
말씀은 하나님을 밝힙니다.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기도로 하늘에 올라 하나님과 동거하고,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내려오셔서 동거하십니다.
우리는 기도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은 말씀으로 당신을 우리에게 내어주십니다.
-앤드류 머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