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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하나님은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셨다.

 2019-03-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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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헤맨 이유를 생각했다. 그들의 목적인 땅만 소유하고,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이다. 축복은 좋아하면서도 하나님을 원치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축복해달라는 기도는 많이 하지만, 하나님을 소유하기를 기도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약속한 땅은 주겠지만, 그분은 함께 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나 대신 사자를 보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겠다. 약속대로 땅은 허락하겠지만 나는 가지 않겠다.’

모세는 결사적으로 기도했다(출 33:12-16).

‘당신이 친히 가지 않으시려거든, 우리만 가게 하시려거든 보내지 마십시오.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서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겠습니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가 세상 그 무엇보다 큰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모세는 이미 왕의 아들로서 세상의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 하지만 주의 영광을 뵙고 나니 그분의 영광 앞에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만약 여러 결핍이 있어도 주님의 영광이면 충분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하지, 약속의 땅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광야는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곳이다. 그러니 정착된 곳에 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곳에는 위기가 도사리고 있으며 하나님을 놓칠 수 있다.

지금의 시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교회에서 여러 가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성가대를 하고, 봉사를 하고, 예배를 드린다. 하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 구분할 수는 없다.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서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겠습니까?”

결정적인 기준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이다. 당신의 백성과 가시적으로 함께하셨던 하나님은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이제는 성령으로 함께하신다. 우리 안에 계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 된다. 그분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선한 일을 이루어가신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 광야에서 끊임없이 인생을 경험했다. 광야에서의 시간은 수많은 결핍에도 불구하고 ‘주님으로 인해 인생이 얼마나 충만한가’를 경험하는 역설의 시간이었다.

같은 의미에서 우리 인생에도 일반적이지 않지만 소모적인 것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이 계속되면 내 인생이 망할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그렇지만은 않다. 하나님이 개입하시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반대의 경우다. 주님이 개입하지 않는 인생, 내버려두는 인생이 비극이며 절망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의 막바지 여정을 떠났다. 그들은 요단 동쪽의 아모리 왕 시혼도, 바산 왕 옥도 다 쳐서 물리쳐 그들의 땅을 점령했다.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심히 두려워 번민했다(민 22:2,3).

결국 그 위세 앞에 겁을 먹고, 주술자인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케 하려 했다. 발락의 말로 짐작해보면 당시 발람은 꽤 유명한 주술자였다.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 민 22:6

발락은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에게 화려한 복채를 들려 발람에게 보냈다. 발람이 하나님께 그들과 가도 되는지 물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발람이 또다시 묻자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민 22:20).

발람은 말씀에 순종하여 아침에 일어나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발락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길 가운데서 칼을 빼어 그를 죽이려 했다. 발람의 나귀가 결국 그를 세 번이나 구하긴 했지만, 이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나님은 발람에게 가지 말라고 하셨다가 다시 그들을 따라가라고 하시고는 말씀에 순종해서 가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신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모른다.

발람은 분명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저주하지도 말고, 함께 가지도 말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민 22:12). 하지만 발락은 발람에게 더 높은 고관을 보내어 그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겠다며, 무슨 소원이든 들어줄 것을 약속했다.

발람은 이 제안에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이미 마음이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는 밤마다 하나님을 찾아가 자신이 듣고 싶은 음성을 들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가라.’

하나님은 발람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셨다. 그것은 그가 당장이라도 듣고 싶던 응답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얼마나 두려운 일이 되었는가? 결국 하나님은 발람의 욕심이 이끄는 대로 그를 내버려두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욕심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며 ‘하나님은 이런 나를 이해하실 거야’라고 스스로 하나님의 위로를 챙기고는 자기가 원하는 길을 선택하여 걸어간다. 그런 막연함과 안일함의 결과는 무엇인가? 어쩌면 하나님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막으시는 것이 축복일지도 모른다. 내 욕심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인생을 향해 베드로후서는 이렇게 말한다.

내 뜻은 이스마엘
하나님의 뜻은 이삭

그들은 바른 길을 버리고, 그릇된 길로 갔습니다. 불의의 삯을 사랑한 불의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라간 것입니다. 그러나 발람은 자기의 범죄에 대하여 책망을 들었습니다.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예언자의 미친 행동을 막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폭풍에 밀려가는 안개입니다. - 벧후 2:15-17, 새번역

다행히도 발람의 말 못하는 나귀가 그의 미친 행동을 기적적으로 막아주었다. 내가 욕심을 따라 흘러갈 때 과연 누가 막아줄 수 있을까? 내 욕심을 좇아 하나님의 음성과 응답을 따내려 한다면 칭호만 다를 뿐 수많은 잡신을 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말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시편 23장 4절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 시편 61장 1절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야고보서 1장 14, 15절

기도
주님, 제 인생에 개입해주시고 인도해주세요. 주님이 개입하시고 이끄시는 인생이 복된 삶이고 축복이라는 것을 늘기억하며 감사하게 하소서.

적용과 결단
오늘도 당신의 삶에 개입하시고 인도하시는 그분 앞에 겸손히 나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낭독으로 만나는 테마
귀로 들어요~ 갓피플 테마. 눈으로만 읽는 것과는 다른 은혜가 뿜뿜. 테마에 담긴 주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다양하고 새롭게 나누어지기를 기도하며, 갓피플 직원들이 직접 낭독했습니다. 어설퍼도 마음만은 진실한 낭독러랍니다^^ 같은 은혜가 나누어지기를...




†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