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가정

왜 암송해야해요? 어른이 되면 더 이상 안 할 거예요

암송의 유익을 알지만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어려우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읖조리며 묵상하는 하가를 실천한다면 우리 삶에 암송의 유익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좋은 칼은 매일 갈고 닦아야 하듯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검을 매일매일 사용하는 하나님이 가정이 되기를 원합니다.

“왜 암송해야 돼요? 저는 커서 성인이 되고 나면 암송 안 하고 싶어요.”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말은 나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지난 10년 동안 불평 없이 순종하며 암송을 해왔던 아이가 갑자기 암송을 왜 해야 하냐고, 하기 싫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충격인데 지금은 어머니가 시키니까 하긴 하겠지만 나중에 자기가 크면 하기 싫다고 하니 나는 그 말에 더욱 낙심이 되었다.
볼멘소리로 불평하며 질문하는 세이에게 나름대로 왜 말씀을 암송해야 하는지 설명을 하긴 했지만 마음이 시원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충격적인 말도 듣고, 눈물 나고 낙심되는 일들을 누구나 겪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며 기도하게 되면, 그 일을 통해서 우리가 고민하거나 기도하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해 깊고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도 있고, 잘못 가고 있던 길을 회개하며 다시금 생명의 길로 전환하게 되는 은혜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세이의 그 말을 통해서, 내가 사명감으로 나름 최선을 다해 아이들에게 열심히 말씀 암송을 시켜왔지만 정작 ‘왜 우리는 암송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그리고 ‘암송한 말씀을 어떻게 사용,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못하고 나누지 못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나 또한 애를 쓰며 힘을 다해 암송을 하긴 하는데 때때로 삶에서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아 낙심되고 마음이 어려울 때가 많기도 했다.

이런 고민에 남편의 조언이 내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남편은 암송하는 그 시간에만 암송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그 암송한 말씀을 빼 드는 훈련이 너무나도 중요하다고 말해주었다. 틈날 때마다 말씀을 읊조려보고, 특히 생각과 마음이 어려울 때, 사단의 공격이 있을 때 말씀으로 물리치고 끊어내는 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 금요기도회 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장면이 있었다. 내가 번번이 자꾸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 때문에 가슴을 찢으며 회개하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아주 날카롭게 날이 선 칼을 빼 들고 무찌르는 것 같은 장면을 보여주셨다. 그리고는 내게 “말씀의 검을 빼 들어라, 그 검으로 찔러 승리해라”라는 메시지를 주셨다.

그 당시에는 그게 좀 막연하기만 했고 실제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하라는 말씀이신지 잘 깨닫지 못했다. 그런데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때 내게 보여주신 장면과 정확하게 일치해서 깜짝 놀랐다. 그 이후로 암송한 말씀을 검으로 빼 들고 싸우는 훈련을 조금씩 해 나갔다.

어느 날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아이들에게 심한 화를 낼 것 같았다. 그래서 혼자 급히 방으로 들어가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암송하는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엉엉엉” 말씀을 끝까지 다 선포하지도 못하고 울어버렸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이 부분을 암송하는데 그만 눈물이 쏟아졌다. 이 죄인 된 나를 구원하기 위해 주님께서 하신 일이 생각나자 눈물이 흐르면서 ‘내가 또 주인이 되어 주님을 외면하고 내 마음대로 하면 안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분노가 안개같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무기로 가장 많이 사용한 말씀은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 말씀이었다. 6남매를 키우려면 얼마나 오래 참아야 할 때가 많은지…. 혼자 중얼거렸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고전 13:4).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고전 13:5).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7).
내 안에는 참을 힘이 없지만, 내 안에 사랑이 없을 때도 말씀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대로 내게 임하여주시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암송하고 선포하면 순간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

이 훈련을 하면서 한 가지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일상에서 설거지할 때나 소파에 누워서 쉴 때나 한적할 때 등 이럴 때 중간중간에 말씀을 읊조리지 않다가 갑자기 화가 날 때나 뭔가 공격이 있을 때 비로소 말씀을 빼 들려고 하면 잘되지 않았다.

‘그래서 시편 1편 말씀에 복 있는 사람은 주야로 그 말씀을 묵상한다고 했구나….’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신 것처럼, 여기서 ‘묵상’한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듯 조용히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묵상(默想)이 아니라 ‘하가’(Hagah), 즉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는 뜻인데, 늘 주야로 말씀을 중얼중얼 읊조릴 수 있는 그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복되고 복 있는 사람이다.

그후로 아이들에게도 우리가 암송한 말씀을 말씀의 검으로 빼 드는 것, 무기로 사용하면서 승리하는 것에 대해서 기회가 되는대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보니, 내가 언제 (암송 안 하겠다고) 그랬냐는 듯이 세이가 하루에 몇 절씩 새 암송을 추가해가며 열심을 내어 암송하고 있었다. 그런 세이에게 “세이야, 그렇게 열심히 암송해서 뭐 하려고?” 하고 물었더니 씩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무기로 사용할 거예요. 그리고 오늘은 암송하는 시간 말고도 중간중간에 몇 번이나 말씀을 읊조려보았어요.”
그 대답을 듣는데 참 너무 감사하고 감격스러웠다. 우리 부모들이나 아이들이나 말씀으로 물리치는 이런 경험들, 그리고 그 승리의 경험들이 많아질수록 말씀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를 깨닫고, 그래서 말씀을 더 사모하게 되는 것 같다.

나도 말씀을 늘 사모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억지로 암송하기도 한다. 하지만 암송한 말씀을 쭉 읊조리다 보면 눈물이 날 때가 많고, 내 안의 생각들이 말씀의 빛으로 정리되고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지면서 육신의 생각은 떠나가고 성령의 생각이 들어오는 것을 경험할 때가 많았다.

어느 날, 아이들을 다 재우고 혼자 누워서 암송했던 말씀들을 복습하고 있을 때였다. 고린도전서 13장 12절을 암송하는데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에서 눈물이 터지려고 했다. 나는 바로 일어나 암송일기를 썼다.

지금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특히, 아이로 인해 힘겨운 마음이 저 천국에서 주님 앞에서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고 위로가 되었고, 온전히 알게 될 그 날이 더욱 기대가 되고 사모가 되었다.
주님! 다 가르쳐주실 그 날이 있다니, 잘 견뎌보겠습니다. 그날 품에 꼭 안고 다 말씀해주세요. ‘아, 그래서 그러셨구나’ 다 깨달아져서 눈물로 주님 품에 안겨서 다 쏟아낼 날을 기다릴게요.

아버지, 오늘도 말씀을 통해 제게 말씀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좋은 밤이에요, 하나님. 굿나잇!
<울보엄마> 권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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