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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상처투성이었던 라켓, 하나님을 만나다-88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영자의 삶과 신앙

어느 소녀의 자화상

처음 탁구를 시작했을 때 나를 이끌었던 단순한 욕구가 ‘이기고 싶다’는 열망이었다면 탁구를 계속하면서는 ‘이기고 싶다’에서 ‘반드시 이긴다’는 승부욕으로 더욱 견고해져 갔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탁구에 대한 나의 집념은 단단했고, 그런 집념과 승부사 기질은 내가 약해져서 주저앉고 싶을 때에도 탁구를 지속할 수 있는 강한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남과 같이 해서는 남 이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제나 남보다 일찍 와서 남보다 한 번 더 연습을 해 보고, 남보다 더 늦게 마지막에 가려고 노력했다.물론 승부욕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이성을 잃고 경기를 망칠 때가 있는데 나 또한 고쳐야 할 못된 버릇들이 있었다. 너무 강한 승부욕은 간혹 나의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할 때도 없지 않았다. 나의 이런 성격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상징물이 바로 나의 탁구 라켓이다.

어렸을 때부터 내 라켓은 늘 흠집투성이로, 상처와 얼룩이 마치 훈장처럼 붙어있었다. 나는 연습이나 게임을 할 때, 경기가 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으면 분풀이를 라켓에 하곤 했다. 나도 모르게 라켓을 깨물거나 탁구대에 내리치거나 공중으로 집어던지는 못된 습관이 있었다. 공중에서 내려오는 라켓을 받지 못하게 되면 라켓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치고 깨지던지 상처가 생기든지 했다.

그래서 내 라켓은 마치 전쟁터의 부상병처럼 늘 상처를 달고 살았는데, 이기고 싶은 승부욕이 과해 뜻대로 탁구가 안 풀릴 때 나도 모르게 라켓에 화풀이를 하는 못된 습관 탓이었다.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지나친 승부욕으로 인한 조급한 마음을 조절하기 위해 내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고, 이런 못된 버릇은 이기는 경기를 위해서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

이 성경 구절은 내 마음을 다스리는 소중한 말씀으로 간직하고 오늘까지 살아오고 있다.

예수님을 만나다

캐나다에서 돌아온 후 팔목의 통증이 주기적으로 나를 괴롭혔다. 진통제를 맞았지만, 진통제는 맞을 때만 잠시 반짝할 뿐이었다. 탁구를 그만두면 괜찮아질 수 있었으나 탁구를 포기한다는 것은 불가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가 끝나면 먼저 교회로 향했다. 하나님께 내 팔이 나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 뒤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기도는 했지만 나아지는 건 없었다. 계속 진통제를 맞으며 훈련을 하고 대회에도 출전해야 했다.

그 기간이 거의 6년이었다. 결국 한계에 도달했다. 진통제 효과가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때가 1983년 개인단식 은메달을 딸 즈음이었는데 매우 중요한 시점이었다. 세계대회 개인단식 준우승으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할 전환점이었다. 오히려 한 계단 위로 뛰어올라야 하는 상황인데 테니스 엘보가 내 발목을 꽉 움켜쥔 것이다. 더는 의학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언덕은 단 하나, 신앙이었다.

참으로 놀랍고 신비하다는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하나님은 나를 말씀 가운데로 부르셨다. 말씀으로 나를 만나주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가는 방식은 정말로 예단하기 어렵다. 그저 모든 일이 지나간 뒤 비로소 깨닫고 감탄하는 것 외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찾아간 기도원에서 나는 비로소 예수님을 만났다. 물론 그 이전부터 교회를 나가고는 있었지만, 내 신앙은 무척 막연하고 피상적이었다. 그저 어리고 미숙한 신앙이었다. 그런데 그 기도원에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던 것이다.

기도원 예배에 참석했는데, 그날 원장 목사님의 설교는 ‘복음’에 관한 내용이었다. 목사님은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을 아름답게 지으셨지만, 인간의 죄와 불순종으로 세상에 고통과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구하시려고 그 아들을 보내셨는데 그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이런 설교는 그 이전에도 여러 차례 들었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전에는 무심히 들었던 말씀이 생생하게 가슴에 들어와 박힌 것이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생생하고 선명하게 내 마음에 전달되었다. 이제는 그 말씀의 의미가 확연하게 이해되었고 큰 울림으로 다가와 내 마음속 깊이 퍼져갔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고통이 내 마음에 느껴졌고, 그분의 사랑에 감당할 수 없는 감동으로 마음이 물결쳤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내가 뭐라고, 나처럼 하찮은 사람을 위해 그분이 그런 참혹한 고통을 감내하셨다는 것일까. 나는 죄인이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만한 가치를 지닌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이런 나를 위해 죽음을 선택하실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내 아버지는 언제나 두려운 분이었다. 엄하고 늘 거리감이 있었는데 아버지를 한 번도만져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제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어주시겠다고 한다. 예수님의 사랑도 감당하기 힘든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이 내게 주어진 것이다.

이 형편없는 죄인에게 영생이라는 선물이 값없이 주어졌다. 감동과 감격이 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고 눈물, 콧물이 쉼 없이 쏟아졌다. 이 작은 몸뚱이에 그토록 많은 눈물과 콧물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펑펑 울며 마음 문을 활짝 열었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했다. 마음이 뜨거워졌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만난 기쁨과 감격이 온몸을 타고 오르는 것 같았다. 비로소 복음을 알게 되었고 온 마음으로 복음을 끌어안았다. 그때 바라본 세상은 이전과 달랐다.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내 마음과 영혼은 행복감으로 충만해졌고 나는 듯 가벼웠다.

나는 말씀에 힘입어 기도하고, 또 그곳에서 나를 위해 중보기도를 해주셨다. 그러던 중 놀라운 일이 내게 일어났다. 6년 동안 지독한 통증으로 나를 괴롭히던 팔이 순식간에 나은 것이었다. 진통제조차 듣지 않던 팔이 멀쩡해졌다. 통증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좋다는 것은 다 해봤었다. 심지어 관절에 좋다는 고양이 삶은 물까지 먹어봤고,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이 살았었다. 그래도 낫지 않던 팔이 깨끗하게 나은 것이다.

내가 체험한 기적이었다. 1984년의 일이었다.

출처 : 주라 그리하면 채우리라 (전광 글, 양영자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