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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테마

 “나는 여기가 더 편한데요.”

익숙한 옛 생활로 자꾸 돌아가려 하는 나는 예수님이 자녀다. 이 신분을 잊지 말자.

 2023-0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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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죄와 싸워 승리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신분 의식’을 회복해야 한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 롬 6:2

이 말씀의 배경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지 않는가? ‘칭의’라는 것은 주인을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전에는 죄와 사망의 권세가 내 인생의 왕 노릇을 해서 거기에 끌려다녔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왕 노릇 하시면서 내 신분이 바뀌었다.

앞에서 이를 홍해 사건으로 설명했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더 이상 애굽 왕 바로의 통치에 영향 받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로마서 6장 2절 말씀을 의역하면 이렇다.

‘이제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넜는데 왜 옛 주인 애굽 왕 아래에 있던 때의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느냐?’

6절과 7절도 같은 이야기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 롬 6:6,7

신분의 변화를 자각하고 살라는 말씀이다.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오래전에 읽었던 글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공사판을 전전하던 꼬맹이가 있었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으나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는데 공사판에서 얻어먹고 공사판에서 자는 아이였다.

씻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땟물이 줄줄 흐르고 냄새가 나서 가까이 갈 수도 없었다. 그 아이를 지켜보던 어떤 부부가 내막을 알고는 너무 가엽게 여겨 ‘저 아이를 우리가 키워야겠다’며 양자로 입양했다.

자신들의 호적에 그 아이를 올리고 며칠을 씻겨도 없어지지 않을 정도로 역겨운 냄새가 몸에 배어 있는 아이를 깨끗하게 씻기고는 방을 마련하여 좋은 침대에 깨끗한 이불을 내주어서 함께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그 부인이 입양한 아이가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해보려고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아이가 없어진 것이다. 새벽에 그 어린애가 문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고 생각하면 아찔하지 않은가? 너무 놀라서 아이를 찾으러 나가려다 보니까 현관 앞 흙먼지가 떨어져 있는 신발장 옆에 웅크리고 자고 있는 게 아닌가. 화도 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녀석을 흔들어 깨워서 뭐 하고 있느냐고 야단을 쳤더니 그 꼬맹이가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기가 더 편한데요.”

공사판을 오래 전전하던 그 아이 입장에서는 깨끗한 이불이 너무 불편했던 것이다. 내가 본문 말씀을 묵상하다가 이 이야기가 왜 떠올랐을까?

이것이 이 땅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다. 고마운 부부가 아이를 양자로 삼았으니, 그 아이는 이제 더 이상 고아도 아니고 옛 생활을 안 해도 된다. 그런데도 그 아이는 더러운 공사판에서 자던 옛날의 생활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도 우리의 주인이 바뀌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옛 생활에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자꾸 옛날로 돌아가려고 한다. 이런 증상은 우리의 실생활 속에서 많이 발견된다. 우리는 상냥한 말투로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하며 상대방을 축복할 때도 마음이 좋지만, 우리 본능은 누군가를 비방하며 수군거릴 때 마음에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가 더 많지 않은가?

“김 집사는 어쩜 사람이 그래?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전화로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난 직후에 찾아오는 마음의 시원함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자꾸 은혜 받기 이전의 옛 생활로 돌아가려고 하는 우리 본능이 작동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공사판을 전전하던 그 아이뿐 아니라 우리도 깨끗한 침대보다도 흙먼지가 떨어져 있는 신발장이 더 편할 수 있다.

이게 밖에 나가 웅크리고 자던 그 아이의 상태고, 우리의 상태다. 옛 주인,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살던 우리는 누구를 축복하고 누구를 살리는 일이 아직은 어색하다. 모함하고 없는 말 만들어내고, 사람 하나 매장하고 따돌리는 데 익숙한 세상에서 살다 보니 더욱 그렇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아이가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흙먼지 가득한 신발장 앞에 웅크리고 자고 싶은 충동이 들 때마다 회복해야 하는 게 무엇인가? 바로 신분 의식 아닌가?

나는 이제 옛 생활을 청산해야 하는 신분이 되었다.’

우리도 죄가 우리를 엄습할 때마다, 유혹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이제 옛 주인 사망의 권세 아래 통치 받는 자가 아니다.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하나님의 사람이다’라는 신분 의식을 회복해야 한다.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는 항상 신분 의식을 기억해야 한다. 옛 주인은 우리 안에 증오를 심어주고 울분을 심어준다. 대한민국이 지금 울분공화국이 돼 가고 있다고 우려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옛 주인의 악한 공작을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용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하나가 되고 회복하려고 애써야 하는 것은, 우리의 새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오늘, 새롭게 살 수 있는 이유, 이찬수  

 † 말씀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 로마서 6장 11절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 히브리서 11장 24~26절

† 기도
하나님, 죄와 사망의 권세가 제 인생을 끌고다녔던 옛 시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의 신분은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익숙한 옛날로 자꾸 돌아가려 합니다. 나의 신분이 바뀌었음을 자각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적용과 결단
오늘도 우리는 익숙한 옛 생활로 자꾸 돌아가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새로운 신분이 되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분 안에 거하기 위해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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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