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화책을 볼 때마다 불만이 있었다.
동화책을 보면 대부분 어려운 환경에 처한 착한 여주인공이 식모살이하고 구박당하다가 왕자님을 만나서 결혼했다, 하고는 끝난다.
대표적인 게 ‘신데렐라’ 이야기다. 신데렐라가 못된 새엄마를 만나 새엄마와 의붓언니들에게 맨날 괴롭힘당하고 고생하다가, 어느 날 유리 구두를 신고 파티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왕자님의 눈에 쏙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왕자님은 신데렐라를 찾아냈고 청혼하고 결혼하면서 동화는 끝이 난다.
동화를 이렇게 끝내면 어떻게 하는가? 나는 늘 이게 불만이었다. 내내 고생만 하던 신데렐라가 멋진 왕자님과 결혼한 후에 왕자님과 함께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까지 기록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과정이 너무나 행복해서 결혼 이전에 신데렐라가 경험했던 모든 고통스러운 과정을 다 보상받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냈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왕자님에게 시집을 갔더니 세상에 이렇게 다정한 남편일 수가 없어서 새엄마에게 구박받던 지난 세월을 다 보상받고, 너무나 행복하게 잘 살았다.”
이렇게는 끝을 맺어줘야지, 잉크가 모자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뚝 하고 끝을 내는가? 조금은 억지같이 들리겠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는가? 우리가 로마서 5장 1절 앞부분에만 머무르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렇게 동화를 끝내는 것과 똑같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 롬 5:1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라는 전제를 믿는다면, 이것으로 끝내면 안 된다. 바울이 강조하는 게 무엇인가? 그 자격 없는 자를 친히 의롭다 해주시고 구원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주신다고 하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우리가 이것을 누리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오늘날 왜 이렇게 전도가 안 되는가? 예수 믿는 우리가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즐거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 믿고 너무나 행복해하는 우리 표정이 전도지이다. 먼저 우리가 복음을 즐겨야 한다. 누려야 한다. 기뻐해야 한다.
이런 걸 보면 내가 어릴 적 철이 없을 때 가졌던 신앙은 반쪽짜리였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내 신앙의 흠모 대상이 누구였는지 아는가? 예수님 십자가 우편에 있던 강도였다. 어린 시절의 나의 신앙생활은 강요당하던 생활의 연속이었다.
‘술 마시면 안 되는 것 알지? 담배 피우면 안 되는 것도 알지? 함부로 연애하면 안 되는 것은 물론 알고 있겠지?’
어린 시절의 나에게 있어서 모든 예수 믿는 어른들은 ‘하면 안 되는 것들’을 감시하는 감시자였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예수 믿게 된 것이 내 삶에 큰 족쇄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그런가,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 우편에 있던 강도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평생을 제멋대로 살다가 죽기 5분 전에 예수 믿고 천당 갔으니, 그땐 그 인생이 너무 부러워 보였다(물론, 이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반항심에서 나온 생각이라는 것을 어린 나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내 평생에 술과 담배를 입에 대 보지 않은 것이 나에게 큰 복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크리스천 중에 제일 불행한 사람이 예수님 우편에 있던 강도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예수님 우편에 있던 강도가 왜 가장 불행한 크리스천인가?
청소년 시절의 나는 열등감이 많았고 나 스스로를 초라한 사람이라고 규정하며 살았다. 우울할 때가 많았다. 그런 내가 어느 날 보니 매우 밝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가 나를 괴롭혀도 ‘허허’ 웃으며 용서하고 용납하는 일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나도 힘들고 상대방도 힘든 인생을 살았는데, 자격 없는 나를 대속해주신 사랑으로 구원해주신 그 감격에 기뻐하다 보니 나도 기쁘고 나를 만나는 사람들도 기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이런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예수님을 믿자마자 십자가 옆에서 죽고 말았으니, 그 강도는 불행하고 안타까운 크리스천이 아니겠는가?
예수 믿으면 이 땅에서의 삶도 기쁘고 즐거워지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삶의 기쁨을 누릴 겨를 없이 세상을 떠났으니 얼마나 불쌍한가?
나는 우리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신칭의,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대속의 사랑의 기쁨을 누리게 되길 바란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내면 안 된다.
신데렐라가 왕자님과 결혼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왕자님을 만나 말로 다 할 수 없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는 게 진짜 동화의 해피엔딩인 것처럼, 하나님은 그저 기계적으로 이신칭의의 ‘구원표’를 나눠주시고는 천국 갈 때 꼭 제출해야 한다며 장롱에 넣어두도록 하시지 않았다.
우리 삶 가운데 늘 대속의 기쁨이 넘쳐서 우울하다가도 금방 내 안에 부어주시는 신령한 새 노래로 인해 언제 우울했냐는 듯 누리고 즐기며 사는 삶을 맛보게 되길 바란다.
-오늘, 새롭게 살 수 있는 이유,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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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갈라디아서 2장 20절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 로마서 5장 2절
† 기도
하나님, 예수 믿는 은혜와 기쁨, 감격을 제대로 누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새롭게 된 삶을 보물함 깊숙이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꺼내어 함께 나누고 즐기게 해주십시오. 대속의 기쁨이 넘쳐 신령한 노래로 바뀌게 하여 주십시오.
† 적용과 결단
당신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는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기쁨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