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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테마

오늘, 새롭게 살 수 있는 이유

매일 새롭게 흐르는 복음의 감격이 오늘을 새롭게 살 능력이 된다!

 2022-1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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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구하는 것이 달라졌기에 따라오는 삶의 변화는 감사와 자족’을 회복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용서함 받은 다윗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로마서 4장 6절부터 8절까지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보자.

“이처럼 공로가 없어도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해 주는 사람의 행복에 대해서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잘못을 용서받고 하나님이 죄를 덮어 주신 사람은 행복하다!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행복하다.’ ”(롬 4:6-8,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읽으니 신명기에서 모세가 했던 행복한 고백이 생각났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 신 33:29

자기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모세처럼 이런 행복을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특히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하여 이런 긍지를 가지고 행복해할 수 있다면 무엇이 부럽겠는가?

이 구절을 읽는데 미국에 있는 누나에게 들었던 이야기 하나가 생각났다.

누나가 출석하는 교회의 장로님 부부가 토끼를 기르려고 시장에 가서 35불 주고 토끼를 한 마리 샀다고 한다. 토끼를 사서 기르는데, 어느 날 밤 이 토끼가 의자 위에서 뛰어내리다가 다리를 다쳤다. 토끼가 관절이 약하다 보니 그만 다리가 부러진 것이다.

다친 토끼를 보고 장로님 부부는 어떻게 했을까?

다친 토끼가 거추장스럽다며 내다 버리고 새로 35불 주고 다른 토끼를 사 오지 않았다. 장로님 부부는 그 길로 동물 병원 응급실로 뛰어갔다. 긴급 수술을 하고 깁스를 해주고 입원을 시켰는데 수술비, 입원비를 포함해서 치료비가 3천 불이 들었다고 한다.

객관적인 팩트만 놓고 보자면 이 장로님 부부가 보인 행동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35불 주고 산 토끼를 3천 불 넘게 들여서 치료해주다니. 그런데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처음에 35불 주고 토끼를 살 때 이 토끼는 35불짜리 토끼였다. 그런데 토끼에게 장로님 부부가 관계 맺음으로 의미를 부여하니까 그 토끼는 더 이상 35불짜리 토끼가 아니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얻게 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 우리가 이 존재의 귀함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은 은혜를 모르기 때문이다. 35불짜리 토끼의 다리를 고쳐주려고 3천 불을 들이는, 이 말도 안 되고 믿기지 않는 행동이 사랑이다.

자격 잃은 우리 인생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 목숨을 내어주셨다. 믿기지 않는 게 당연하다. 경제 논리만 가진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35불짜리 토끼를 치료해주겠다고 3천 불을 썼다고 하면 믿겠는가?

사랑을 안 해본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35불짜리 인생에 3천 불 들여서 살려주는 정도가 아니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내어주셔서 새로운 인생으로 만들어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존재의 귀함을 자각하고 나면 오늘의 현실이 초라해도, 살면서 이런저런 어려움에 부닥쳐도 그것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세처럼 늘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노래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서른 살 때 하나님이 소명을 주셔서 이민 가방 두 개 달랑 들고 혼자서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아무 대책 없이 무턱대고 귀국했기 때문에 당장 기거할 곳이 마땅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생을 좀 했다.

특히 귀국 첫해 여름은 나에게 큰 추억으로 남아 있다. 신학대학원에 입학한 후에 첫 방학을 맞았는데,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이런 생각을 주셨다. ‘나는 목사가 될 사람이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성도들의 상황과 삶도 알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그해 여름방학 내내 나의 모 교회 복도에서 보냈다. 폭이 좁은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 평평한 곳에 돗자리를 깔고 거기서 귀국 첫 여름을 보냈다. 노숙자처럼 여름을 보낸 것이다. 그런데 하나도 서글프지 않았다. 내 존재에 대한 해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35불짜리 토끼 같은 인생이 아니었다. 내 다리가 부러지면 3천 불을 들여서라도 고쳐주시는 하나님과 관계 맺은 인생이었다. 더군다나 목사가 될 사람으로서 어려운 형편의 성도들의 애환을 겪기 위해 자초한 일이니 조금 불편하기는 했어도 서글프지는 않았다.

지금도 나는 30년도 더 지난 나의 젊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당시에 나는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었고, 그 감격의 힘이 나를 청소년들을 섬기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귀국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귀국 첫해 내내 내 마음에는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벅차 올랐다. 그랬더니 교회 복도에서 생활하는 불편하고 초라한 생활조차도 기쁨과 감격이 되었다. 

오늘날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이 자꾸 열등감에 빠지는가? 자기 존재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자신을 시장에 내다 파는 35불짜리 토끼처럼 생각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가? 아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존재 전체를 내어주시고 구해주신 존귀한 존재이다. 이 은혜,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이신칭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에게 이 감격이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우리 삶에서 반드시 회복해야 할 감격과 감사가 바로 이것이다. 35불짜리 토끼 같은 우리 인생을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존재를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가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감격으로 덩실덩실 춤을 출 수 있는 그 기쁨이 우리에게 회복되기를 바란다. 내 형편이 어렵다고, 삶의 현실이 벅차다고 안달복달하며 사는 것은 이 은혜와 감격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 십자가 앞에서 이신칭의의 그 놀라운 감격으로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 오늘, 새롭게 살 수 있는 이유,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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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에베소서 2장 8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 로마서 5장 21절

† 기도
하나님, 저를 존귀한 존재로 삼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더 이상 시장에 내다 파는 35불짜리 토기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존재 전체를 내어주시고 구해주신 존귀한 자입니다. 이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감사하게 하소서. 이 기쁨이 저에게 회복되게 하소서.

적용과 결단
왜 내 존재가 작고 초라해보일까요? 왜 자꾸 열등감에 빠질까요? 내 존재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이 자신의 존재 전체를 내어주시고 구해주신 존귀한 자입니다. 이 은혜가 당신 안에서 회복될 수 있기를 간구합시다.

† 2024년 사순절 40일 작정 기도 2월14일(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