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회심이든 거짓 회심이든, 똑같은 회심은 하나도 없다. 참된 회심의 경우,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회심이 일어난 정확한 날짜와 상황을 기억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부정확한 기억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극적이고 즉각적인 회심을 경험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긴 회심의 과정을 거쳤다고 말한다. 후자의 경우, 그들은 회심의 과정에서 겪은 불과 두세 개의 굵직한 사건을 기억할 뿐이다. 어떤 경우든 간에 그들은 모두 죄 사함과 구원을 얻기 위해 (종종, 기도를 통해 직접) 예수께 나아간 것이다.
이제 나는 목사로서 수십 년 동안 목회하면서 듣고 본 회심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내가 얘기하는 모든 경우에서 나는 당사자가 진짜로 회심했는지 아닌지에 대해 단지 ‘정황(情況)에 근거한 추측’을 할 뿐이다.
회심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미묘한 문제이다. 나는 그 누구도 불쾌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며, 내가 무례하거나 비판적이거나 오만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원하지 않는다. 더욱이, 나는 누구도 혼란에 빠뜨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독자들에게 몇 가지 유용한 사례들을 소개하는 것은 회심의 문제가 인생에서 유일한 궁극적 문제로서 무한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목회 기간 동안 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를 좀처럼 묻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묻는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종종 그런다. 그리고 주의 깊게 듣는다.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오로지 그들이 회심한 사람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나는 재판관이 아니라 평범한 죄인일 뿐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기를 바란다.
X는 우리 교회의 주일 아침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는 언제나 혼자 왔고, 성경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늦게 오고 일찍 떠났다. 나는 그가 대개 예배 시간에, 특히 설교 시간에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4,5주가 지난 후 어느 월요일 아침 그는 내게 전화를 해서 개인적으로 만날 수 없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그날 늦게 만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 나는 교회에 나간 적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고작 한두 번 나갔을 겁니다. 언제, 어느 교회에 나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텔레비전에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을 본 후 교회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사실 나는 예수님만을 믿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의문이 많습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라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걱정됩니다. 목사님은 정말로 지옥이 있다고 믿습니까?”
그의 이런 질문들은 흔히 들을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처음부터 분명히 드러났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옥을 면할 수 없는 죄인임을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너무 고민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이 무엇이고 왜 죽으셔야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내 말에 귀를 기울였고, 깊은 생각에서 나오는 질문들을 던졌다. 대화를 끝내면서 나는 그에게 죄 사함과 구원을 얻기 위해 예수께 나아가라고 간절히 설득했다.
우리는 함께 기도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진정한 상태를 보여주시고 예수님을 계시하시도록 기도했다. 내가 그에게 구원을 위해 나와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아직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는 몇 주 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가 내 말을 듣고 두려움을 느껴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에게 좀 더 편한 얘기를 들려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몇 주 후에 그는 다시 교회에 나왔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그는 내게 다가오더니 얘기를 좀 할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다른 교회들을 몇 군데 가보기로 결심하고 실제로 가보았습니다. 목사님의 견해에 동의하는 목회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을 듣고도 내게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나는 목사님의 기도가 생각났고,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애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을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평안을 느꼈고, 내가 죄 사함 받았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얘기를 모두 목사님께 들려드리기 위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이 일은 얼마 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 후 나는 그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는 회심한 후 몇 달 후에 세례를 받았다. 현재 그는 성경을 공부하고 규칙적으로 교회에 나오고 복음을 증거하려고 힘쓰고 봉사한다. 그는 평안을 누리고 있다.
어린이를 상대로 전도 사역을 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은 지금 마음이 검지만, 흰색 마음을 갖겠다고 선택할 수 있어요”라고 설명했을 때 Q는 그렇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흰색 마음을 갖고 싶었기 때문에 짧은 영접기도를 드렸다. 그렇다면 그때 그녀는 회심했는가? 그것은 알 수 없다.
Q는 머리로는 복음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신학은 건전했다. 그녀는 늘 건강한 도덕적 선택을 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들처럼 극적인 회심의 체험이 자기에게 없는 것이 늘 불안했다.
내가 그녀에게 그녀의 회심에 대해 말해달라고 했을 때, 그녀는 어린이 전도자들 앞에서 흰색 마음을 선택한 경험을 말할 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예수께 나아간 적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와 나 사이의 대화의 결과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녀는 그녀의 삶을 주님께 다시 바치기를 원했다. 그 후 사후(事後) 관리 차원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회심한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자기가 예수님의 의(義)를 믿고 의지한다고 말했다. 내가 볼 때, 그녀는 어린이 전도자들 앞에서 흰색 마음을 선택했을 때가 아니라 그녀의 삶을 주님께 다시 바쳤을 때 거듭났다.
이제 그녀의 삶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징후들이 나타난다. 그녀가 만일 자신의 삶을 주님께 다시 바치지 않았다면, 어릴 적 경험 이외에는 다른 확증 없이 자기가 천국으로 가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계속 살아갔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등골이 오싹해진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이 책의 중심적 주제들에 대해 어떤 목회자와 의견을 나눴다. 나는 그가 몇 가지 사항에 대해 내게 깊이 있게 질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그는 여러 해 동안 복음을 전해왔지만, 진정한 회심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복음을 전했고, ‘결신(決信)의 초청’이라는 전통적 방법과 영접기도를 사용했다.
어느 날 그는 내게 이렇게 고백했다.
“목사님께서 내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즐겨 사용한 방법을 문제 삼았을 때 나는 화가 났습니다. 내 모든 사역의 핵심적 부분에 대해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나는 나 자신의 회심에 대해서도 다시 검토했습니다(이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검토 결과, 나는 내가 회심했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번 계기에 나는 내 사역을 돌아보고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평생의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그의 교인들을 진정한 회심으로 이끌어 천국에 가게 만드는 것임을 분명히 깨달았다.
T는 이단종파를 믿는 부모에게 태어나 양육되었다. 그의 부모가 속한 이단종파는 성경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지만 역사적 정통 기독교 교리를 믿지 않고 삼위일체를 부정하며 자기들만이 참된 교회라고 주장하는 소종파이다.
그러나 T는 대학생 때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이 자기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깨달았다. 그에게 이 사건은 충격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위험스러운 것이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가족의 눈치를 보느라고 가족의 교회를 떠나 정통적인 교회들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황당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그는 미국에 살면서도 지하(地下)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했다! 인터넷을 통해 그는 어떤 성경공부 및 기도 모임과 교류했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따랐다. 그는 장차 다른 주(州)로 이사하여 자기가 그리스도인임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희망했다.
Y는 매우 영적이다. 그녀는 교회의 어떤 예배들에서는 흥분 상태에 빠져 사람들로부터 이탈하기를 좋아한다. 종종 그녀는 단순한 신학적 문제들에 대해 묻지만, 성경의 주요 교리들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많은 멋진 라디오 및 텔레비전 설교자들의 설교를 듣고 그들에게 약간의 헌금을 보내며, 기적적 신유(神癒)가 일어났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녀는 오랜 기간 교회 출석을 기피했다. 또 다른 때에는 이 교회 저 교회를 떠돌아다녔다.
그녀는 오직 십자가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주장에 분개한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사랑이 너무 크시기 때문에 오직 예수님만을 유일한 구원의 길로 삼지는 않으신다고 믿는다.
그녀는 자기가 영적이고 사랑이 많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녀는 자신이 영적으로 위험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며, 그런 위험에 대해 생각해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경건한 티를 내는 것과 소위 영적 체험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는 자신이 거듭났다고 주장하지만 내가 볼 때 그녀는 거짓 회심을 한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을 얻기 위해 예수께 나아간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Z는 성경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이 교회 저 교회를 떠돌아다니면서 자기가 성경을 가르칠 사람을 찾는다. 그는 재미있고 호감이 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영향력 있는 그의 성격에 끌린다.
어느 주일, 교회에서 그날의 사역을 다 끝낸 후 나는 그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에게 회심의 간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에게 회심의 간증이 없다는 말은 그가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救主)라고 말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가 성경을 그토록 잘 아는데도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는 도덕적이고 깨끗한 생활을 한다. 그는 규칙적으로 교회에 일찍 오고 늦게까지 머문다. 그는 친근하고 사교적이고 친절하며, 그 외에도 장점이 많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에 대한 얘기, 그리고 구원을 얻기 위해 오직 예수님만을 믿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그는 매우 불편해한다. 내가 볼 때, 그는 자기의 정직한 행동과 올바른 교리에 대한 믿음을 의지하는 것 같다. 그는 멋지고 영적인 사람이지만, 매우 위험한 상태에 빠져 있다.
W는 ‘알코올 중독자 치료 협회’에서 운영하는 12단계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그것을 계기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물론 그는 자기 나름으로 이해한 하나님을 찾았다).
사실 처음에 그는 희망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와 나는 종종 영적인 것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때마다 알맹이 있는 견실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내 눈에 그는 정말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몇 달 동안 교회에 나왔다. 그러나 그는 예수께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가 회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그는 교회에 나오지 않았고, 내게 전화도 하지 않았고, 나를 찾아와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다.
나는 궁금해서 그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는 자기가 새 교회, 즉 ‘더욱 영적인 교회’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교회가 세상의 모든 종교들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는 회심을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 회심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부처, 모하메드, 모세, 크리슈나(Krishna,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영웅 신),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도 예수님의 말씀과 똑같은 말을 한다고 믿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믿었고, 행복해했다. 심지어 주일학교 교사로 일하려고 했다. 그는 나와 친구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를 원했지만, 내가 증거하는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는 나를 그의 교회로 초대했는데, 그 교회는 뉴에이지 단체로서 정신과학협회(Mind Science Foundation, 미국의 텍사스 주에 있는 사설 비영리 과학협회로서 1958년 몽상적 박애주의자 토마스 베이커 슬릭이 창설했다)와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교회였다.
또한 그 교회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교회성장 테크닉을 사용하기도 했다. 나는 그 단체로부터 그들의 소책자를 우편으로 받았기 때문에 그 단체를 잘 안다.
그것은 자기들의 이름과 역사를 숨기면서 현재 유행하는 영성을 이용해보려는 이단종파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단체에 가입하고 있으며, 그 교회는 그 지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W는 거짓 회심을 한 사람이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성령님이 너무 늦기 전에 그에게 예수님을 계시하시도록 기도하는 것뿐이다.
B는 한때 ‘여호와의 증인’이었으나 그것을 거부했다. 그녀는 구원이 지식과 봉사에 달려 있다고 믿었다. 그녀는 매우 활동적이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이라도 기꺼이 떠맡았다. 그녀를 식사에 초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면 매우 재미있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일했고, 공부가 직업인 사람처럼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성경을 매우 열심히 읽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열정에 감탄했다.
일찍이 나는 그녀에게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느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가 여호와의 증인 단체에서 나왔지만, 그것이 예수님을 원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녀는 본래 종교에 열광하는 성격이었고, 성경에 매료되었다.
그녀가 교회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은 웬만한 사람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열심히 자기의(自己義)를 쌓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참된 회심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려고 시도했을 때 그녀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의 도피처는 그녀의 선행(善行)이었다.
나는 그녀가 계속 일하도록 내버려두었고, 심지어 세례를 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실수였다! 나는 그녀가 세례를 받으면 무슨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전혀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세례 받은 것이 그녀의 눈을 가렸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정죄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녀는 거듭난 사람들은 세례를 받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녀는 세례를 다시 받기를 원했다. 내가 주저하는 태도를 보이자 그녀는 다른 교회로 가서 또 세례를 받았다. 결국 그녀는 여러 교회로 가서 세례를 받았고, 그곳들에서 봉사했다.
아마도 그녀는 그녀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교회에 가서 정착할 것이다. 그녀가 장차 다시 여호와의 증인 단체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C는 샌 틴 주립 교도소의 수형자였다. 30대 중반에 이미 그는 많은 전과 기록을 가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꽤 오래 복역할 예정이었다.
그는 자기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후회하는 것으로 보였다. 교도소에 온 후 몇 주 동안 그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극도로 약해져 있었다. 그는 울고 또 울었다. 그는 다시는 마약을 사용하지 않고 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교도소 교회에서 위로를 얻었는데, 왜냐하면 죄수들과 자원봉사자들이 그를 무조건적으로 받아주었기 때문이다(나도 그 자원봉사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그와 길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때 그는 다시 감옥에 들어왔다는 충격에서 벗어나 있었다. 모든 죄수들이 그렇듯이, 그도 역시 ‘피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의 삶과 그의 딱한 처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그의 처지는 정말 딱했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거룩하고 의로운 하나님을 ‘거역하여’ 죄를 지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자기의 범죄가 하나님의 의로운 법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라는 생각이 그에게 없었다.
그의 마음이 후회로 가득했지만, 그에게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자기가 잡혔다는 사실이었다. 그에게는 회개하는 마음이 없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거역하여’ 죄지었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회심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경건한 사람으로 변했다. 교도소 교회에서 빠른 속도로 지도적인 위치에 오를 정도로 말이다. 그러므로 그가 자신을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기고 또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인식을 심어준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회심의 간증이 없었다. 그는 예수께 가서 죄 씻음을 받은 적이 없었다. 다만 그는 예수님을 매우 존경했고, 자기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비록 그가 예수님을 ‘구주’라고 불렀지만, 정말로 예수님을 구주로 여겨 그분께 나아간 적은 없었다.
나의 이런 얘기가 너무 가혹한 판단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가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한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간증(고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C는 설교자들이 하는 말을 앵무새처럼 자꾸 반복했을 뿐이다. 내가 그에게 자세히 물었을 때 그에게 회심의 간증이 없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D는 가족 중심적 교회에서 즐겁게 신앙생활을 했다. 그의 교회는 예쁜 건물과 모든 연령층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갖춘 좋은 교회이다. 그와 그의 가족은 열심히 교회생활을 했다.
그런데 누군가 그에게 회심에 대한 내 설교 테이프를 건네주었고, 그는 내 테이프를 듣고 크게 당혹해했다. 그는 내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우리가 서로 만나서 얘기한 적은 없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지만 나는 목사님의 설교처럼 길고 이상한 설교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형제님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형제님은 회심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당시 내가 용기 있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다). 그는 죄 사함 받았다는 고백을 내놓지 못했다. 그는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는 참된 회심 없이 단지 교회에 다녔을 뿐이다.
그는 자기가 회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호감이 가는 성실한 사람이지만, 안타깝게도 지옥 가까운 곳에서 깊이 잠들어 있다. 그는 내 얘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의 교회 목사에게서 그의 견해에 동의한다는 말을 이끌어냈다. 그 이후 그에게서 다른 변화는 없었다!
N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특히 끈끈한 정을 나누기 위해 모이는 작은 모임들을 좋아한다. 그녀와 얘기를 나누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다. 또한 그녀는 현재 유행하는 심령술을 몇 가지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치료자’라고 여기면서, 유사 오컬트(occult, 신비적이거나 초자연적인 현상. 또는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 기술) 방법들을 사용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녀는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주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N은 자신이 기억하는 한 줄곧 그리스도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동안 유니테리언 교회(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며, 교리의 일치 없이도 신앙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교회)의 목회자들이었으나, 그녀는 그들과 달리 삼위일체를 믿는다.
그녀는 자기가 어렸을 때 예수님이 자기에게 나타나셨으며, 자기가 아플 때 자기를 고쳐주셨다고 말하는데, 이 이야기는 매우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녀는 예수님이 위대한 의사라고 믿으며, 자기가 그분의 능력으로 사람들을 치료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기가 신학적으로 정통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눈 후 내가 발견한 바에 의하면, 그녀는 어렸을 때 예수님의 환상을 본 것과 그 후 병이 치료된 것이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라고 믿고 있다. 그녀는 성경의 교훈과 교리를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정서적 및 영적 치료를 강조하는 명상 모임들에 더 끌린다.
F는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의 부모는 1주일에 세 번 그를 교회로 데려갔다. 유아세례를 받은 그는 그렇게 자주 교회에 가는 것에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그의 기억에 의하면, 그는 모든 복음주의적 교회들이 믿는 표준적인 교리들을 믿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집을 떠나 군대에 들어갔다. 그때 그는 그의 기독교 신앙을 집에 두고 갔다.
그와 나는 결혼 피로연에서 만났다. 우리는 큰 홀의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후 다소 열띤 토론을 벌였다. 우리는 나이가 비슷했기 때문에 마치 오랜 친구처럼 얘기했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성경구절이나 찬송가 가사를 많이 알았다.
그러나 대화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그가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알던 미국인 불교 신자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었던 표현과 개념들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그가 “시간 안에 존재한다”라든가 “날마다 진짜 삶을 산다” 같은 얘기를 늘어놓을 때, 나는 그에 대한 내 판단이 옳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는 그때까지 거의 30년 동안 명상을 해왔으며, 아주 철저한 불교 신자였다. 그가 애당초 그리스도인이 아니었고 단지 교회에 다녔을 뿐이라고 내가 넌지시 말했을 때,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그에게 자세히 설명했고, 그는 내 말이 옳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자기 부모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맞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그는 진리를 상대적인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나와 내 부모님은 똑같이 산의 정상으로 오르는 것인데, 다만 서로 다른 길로 오르는 것일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들어가는 글’에서 나는 이 책(영어 원서)의 초판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조금 언급했다. 그들이 보내온 이메일과 편지 내용 중 대표적인 것 몇 개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이 내용이 자기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참된 회심을 하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기를 바라는 성도나 목회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