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4. 달려갈 길을 마치리라
주인님 나를 바칩니다

30 제 모든 것을 바쳐 보답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위엄을 흠 없이 보여주는 거울 같으신 나의 주인님,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님의 영혼이 떠나신 직후 주님의 몸이 죽음의 분명한 징후들을 나타내며 핏기 없이 가여운 모습을 보이셨으니, 주님을 경배하고 주님께 감사합니다.

아, 슬픕니다! 인간들 중 가장 아름다우셨던 예수님! 그토록 아름답고 매력적이던 주님의 얼굴이 깨끗지 못한 입술들에서 나온 더러운 침으로 얼룩졌습니다. 죽음과 치열하게 싸우시는 중에 주님의 아름다운 젊음의 붉은 혈색이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사랑이 넘치시는 나의 주인님!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님께서 저의 죄를 깨끗이 씻어주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몸이 추한 모습으로 변하도록 스스로 허락하신 것은 제 영혼을 깨끗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토록 끔찍한 죽음을 당하신 것은 저를 영원한 죽음에서 건지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망아! 네가 어떻게 한 것이냐? 너는 기름부음을 받으신 주님께 손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네가 주님에 대해 무슨 권리가 있느냐?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무슨 잘못을 발견했느냐?

너는 주님을 공격해 돌아가시게 하였기 때문에 너 자신도 해를 당했다. 생명을 멸함으로 너 자신을 멸하였다.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의 날카로운 발톱에 찔렸기 때문에, 너는 너의 극악한 영역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다.

이 일은 선지자가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호 13:14)라고 말함으로 일찍이 예언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에 적절히 응하여 교회는 “생명이 나무 위에서 죽었으므로 무덤은 자기의 독침毒針을 빼앗겼노라”(중세에 고난 주간의 예배 끝에 불렀던 노래의 일부 - 역자 주)라고 노래하였다.

그러하오니, 오, 그리스도시여! 주님이 돌아가심으로 생명의 약속이 제게 회복되었고, 주님이 죽음의 왕을 정복하심으로 기쁨의 면류관이 제게 허락되었습니다.

주님이 나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놀라운 은혜가 주님에게서 흘러나왔으니, 그 은혜가 우리의 생명을 풍성하게 하였습니다. 주님의 고난의 열매는 무한합니다. 주님의 고난 덕분에 원죄原罪가 소멸되었고, 개인의 죄가 용서되었고, 사죄赦罪의 길이 활짝 열렸고, 형벌이 완화되었고, 복수가 중지되었고, 모든 채무가 사라졌으며, 통회하는 자에게 긍휼이 베풀어졌습니다.

나의 주인님! 주님의 죽음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누구를 위하여 돌아가신 것입니까? 천사들을 위해서는 아닌 게 분명하니, 천사들은 언제나 진리 안에 충실히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들을 위해서도 아니니, 그들은 타락 이후 자신들의 의지가 점점 더 완악해져서 회복 불능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바로 인간을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인간은 마귀의 간계에 속아 타락하여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존재의 악의惡意에 의해 사망에 이른 인간이, 이제 다른 존재의 사랑에 의해 다시 생명을 얻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 크고, 주님의 지혜는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놀라운 비밀이 여기에 있으니 십자가를 통해 인간이 구원받고, 주님의 굴욕을 통해 인간이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주님의 고난을 통해 인간이 영광에 이르며, 주님의 죽음을 통해 인간이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나의 주인님! 주님의 거룩한 십자가 고난은 우리의 모든 상처를 치료하는 양약良藥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모든 원수들을 이기는 승리요,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온전히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주님의 죽음은 우리의 악惡을 종식시키고 우리의 선행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주님의 십자가 고난에서 흘러나오는 열매와 유익을 기뻐합니다.

저는 주님이 저를 구속救贖하셨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지만, 또 한편으로 주님이 지극히 고통스럽게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셨기에 주님과 함께 기뻐하는 것은 거룩한 일이며, 주님이 저를 위해 그토록 무서운 고통을 당하셨기에 주님의 고통을 마음 아파하는 것도 거룩한 일입니다.

신실한 영혼아! 이제 십자가에 달리신 그대의 구주救主의 창백하고 슬픈 얼굴을 보라. 돌아가신 주님의 몸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그대의 깊은 속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려라.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늘 바라본다면 그대는 인생의 시간을 매우 값지게 보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의 생각이 거룩하고 고상한 것에 늘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의인의 마음속에 계신 그리스도는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아 1:14, 고벨화는 향기를 풍기는 흰색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같도다.

그대의 마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라. 그리스도는 그대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이제 그분의 몸이 십자가에 달려 있다. “그대의 구원이 매달려 있는 나무 십자가를 보라!” 십자가는 신자에게는 구속救贖이지만, 불신자에게는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가시 면류관을 쓰신 그리스도의 머리는 그분의 위엄스러운 가슴에 닿을 정도로 숙여져 있으니, 그분에게는 생명의 징후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그리스도의 눈은 이제 전혀 볼 수 없고(하지만 그 어떤 것도 그분의 눈을 피해 숨을 수 없고) 그리스도의 귀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하지만 그분은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그 일을 아신다).

모든 꽃들에게 향기를 선물하신 분이 이제는 아무 냄새도 맡지 못하신다. 만물에게 생명과 음식을 주신 분이 이제는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신다. 벙어리의 입을 열어주신 분이 이제는 입술을 움직이지 못하시고, 제자들을 가르치신 분이 이제는 아무 말씀도 하지 못하신다.

오직 진리만을 말씀하신 혀가 이제는 침묵을 지키고, 전에는 해보다 밝았던 얼굴에서 이제는 핏기를 찾아볼 수 없다.

염주비둘기의 뺨처럼 아름답던 뺨이 이제는 그 광채를 잃었고, 전에는 하늘을 향해 벌렸던 두 손이 이제는 날카롭고 단단한 못으로 고정되었다. 기도하기 위해 무릎 꿇는 데 익숙했던 두 무릎이 이제는 벌거벗겨진 채 힘없이 늘어져 있고, 몸의 무게를 지탱해주던 대리석 기둥 같던 두 다리(아 5:15 참조)가 이제는 힘없고 견고하지 못하다.

여러 곳을 다니며 말씀을 전하느라 자주 피곤을 느꼈던 두 발이 이제는 쇠못으로 십자가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부분이 무한한 고통의 흔적을 드러낸다. 그분의 몸은 성한 곳이 없고 온통 피로 덮여 있다. 그러나 두 강도의 경우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뼈는 부러지지 않았으니,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는 구약의 율법이 예표豫表한 대로 뼈를 부러뜨려서는 안 되는 참된 어린양이시다.

“입은 심히 다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여자들아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일다”(아 5:16). 이렇게 아름답던 분이 죽음으로 인하여 그토록 가여운 모습으로 변하셨다! 만일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 천 번을 죽는다 해도 그분의 사랑에 다 보답할 수 없다.

내 영혼의 구세주이신 아름다우신 예수님! 주님은 저의 영혼이 제 몸을 떠날 때 그 마지막 순간의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제가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는 것을 허락하실 수 있습니다.

충심衷心으로 구하오니, 이 연약한 몸 안에서 사는 동안 저의 모든 소원과 행동을 바쳐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제가 많은 시험을 이겨낸 후에 제 삶을 은혜 가운데 마치고 영원한 지복至福의 상급을 얻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