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4. 달려갈 길을 마치리라
주인님 나를 바칩니다

26 잠시 주님의 위로가 없다 해도 인내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신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십자가 위에 홀로 무력하게 방치되셨지만 인내하셨으니, 주님을 경배하고 주님께 감사합니다.

주님은 가장 견디기 힘든 시간에 성부 하나님께, 천사 무리에게, 이 땅의 모든 피조물에게 버림받으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이 된 것처럼 느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아무 능력도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된 것처럼 느끼셨습니다. 오직 슬픔에 빠진 주님의 어머니와 그녀를 책임지게 된 제자와 소수의 연약한 여자들만이 주님 곁에 남았습니다. 주님의 어머니는 슬픔과 두려움 때문에 주님께 거의 말 한마디 못하였습니다.

나의 주인님!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비통하게 외치셨으니,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비통한 외침은 사람들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주님께서 모든 위로를 박탈당한 채 지극히 큰 고통을 당하셨음을 잘 드러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주님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간주했습니다. 아니, 그 정도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극악무도한 범죄자이기 때문에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영혼아! 예수님의 이 비통한 외침은 무엇보다도 네게 깨달음을 주시기 위한 것이니, 이 외침에 특별히 주목하라.

이 외침에 담긴 깊은 뜻은, 본래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만유의 주님께서 자신의 아버지의 귀에 절박한 상황을 호소해야 할 만큼 지극히 비참한 상태로 떨어지셨다는 것이다.

본래 아버지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서 그분과 함께 일하시는 예수님이, 이제는 아버지께 버림받았다고 비통해하시는 것이다. 본래 만물을 붙드시는 일을 전혀 어려움 없이 감당하시는 분이, 이제는 자신조차 감당하기 힘들다고 외치신 것이다.

본래 슬픈 자나 병든 자를 위로하는 데 능하신 분이, 이제는 아무도 몰라주는 무력한 분이 되었다고 호소하신 것이다. 본래 모든 사람들의 기도를 듣는 일을 맡으시고 특히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시는 분이, 이제는 낮아지시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라고 부르짖으신 것이다. 십자가 고난이 시작된 후 이제까지 주님이 이렇게 비통하게 소리치신 적은 없었다!

오, 그리스도시여! 쉽게 고통당할 수 있는 육체를 지니시고 십자가에서 저의 유익을 위해 비통하게 부르짖으셨으니, 감사합니다. 주님이 버림받으셨기에 제가 위로를 받았고, 주님이 비통하게 부르짖으셨기에 제가 격려를 얻었고, 주님이 약해지셨기에 제가 강해졌으며, 주님이 징계를 받으셨기에 저의 모든 죄와 허물에 대한 대가가 치러졌습니다.

주님은 하늘에서 오신 의사醫師로서 무한한 사랑과 자비 가운데 이 고난과 징계를 스스로 당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진하여 약한 자들과 함께 약해지시고,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슬퍼하시며, 근심하는 자들과 함께 근심하셨습니다.

또한 압제당하는 자들에게 친구가 되어주셨고, 주님께 속한 모든 약한 사람들을 위해 호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 비통한 외침은 절망이나 반항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예민한 인간 본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죄의 얼룩이 전혀 없는 주님의 육체가 지극히 고통스러운 죄의 형벌을 당하셨지만, 주님의 마음은 지고至高의 복을 누리셨습니다. 그렇지만 인류의 구속救贖을 이루실 때 주님의 신성神性 때문에 주님의 고통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신성이 주님의 놀라운 힘과 인내심에서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여! 내 말을 들어보라. 예수님의 처절한 외침을 듣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결코 신실한 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비통한 부르짖음을 듣고 마음이 찔리지 않았다면, 결코 진실한 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자연自然조차 예수님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 불가사의한 현상을 보였다. 제6시(낮 12시)부터 제9시(오후 3시)까지 태양이 이 땅에 밝은 빛을 보내지 않았으니, 이는 밝은 빛을 받을 자격조차 없는 자들에게 비추기를 거부한 것이다.

땅도 자기를 지으신 분에게 가해진 상처를 보고 떨며 진동하면서, 생명의 주님께서 그토록 참혹한 형벌을 당하신 것을 한탄하였다. 자연조차 주님이 돌아가시는 것을 그냥 보고 있기 어려운 마음을 그런 식으로 드러냈다.

이성理性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여! 그대가 이성이 있다면 태양이 슬퍼하고 땅이 떨 때 함께 탄식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비통한 외침을 깊이 생각해보라. 예수님이 왜 소리치셨는지, 그분의 외침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아라. 예수님은 그토록 무서운 고통을 당하면서도 인내하며 잠잠하셨으니, 그분의 입술에서는 아름다운 사랑의 말씀만 흘러나왔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이름만을 언급하셨으니, 이는 외로움의 고통을 오직 아버지께만 알리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어머니께 위로를 구하지 않았고, 친구들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으셨다.

이렇게 하신 것은 그대가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 예수님을 본받아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대의 몸이 약한가? 정신적으로 지쳐서 우울한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가? 그대의 가난이나 부족함 때문에 사람들이 그대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는가? 그렇다 할지라도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말라. 오히려 그런 경우들을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아라.

그럴 때에는 멸시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일시적으로 아버지께 버림받으신 예수님을 안전한 피난처로 삼아 그분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그분의 외침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라.

그대의 몸에 병이 생겨도 온유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라. 그대를 돌보는 사람들이 그대를 소홀히 하거나 형제들이 그대를 거의 찾아오지 않아도 분노하지 말라. 십자가에 달려 버림받으신 예수님을 생각하여 하찮은 불편함에 대해 불평하지 말라. 그 대신 예수께서 찾아와 도와주시기를 구할지니, 이는 ‘버림받음’을 ‘위로받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그분께 있기 때문이다.

위로해주는 듯하다가 결국 실망시키고 마는 이 세상의 것들을 다 잊어라. ‘내 친구들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 걸까?’ 하고 고민하며 안달하지 말라. 눈을 들어 십자가에 달리신 분을 보고, 그분의 거룩한 상처의 의미를 깊이 새겨라. 세상과 관련된 온갖 생각들을 버리고, 오직 하늘 본향本鄕에 생각을 집중하라.

그대는 육체를 따라 나지 않고 성령의 자유함 가운데 고결하고 구별된 혈통에서 나왔으니,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님을 맏형으로 모셔라. 그분들에게서 풍성한 영적 도움을 받을 수 있으므로, 그대는 긍휼이 넘치는 구주救主의 선하심에 소망의 닻을 내리고 최후의 심판 날을 확신 가운데 기다릴 수 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여! 아버지는 지극히 높으시고 경외를 받아 마땅하십니다.

아버지, 십자가에 달려 못 박히신 사랑하시는 아들의 손을 통해 드리는 이 종의 기도를 자비롭게 들어주소서. 제가 범한 모든 죄를 용서하소서. 하늘 은혜의 선물이 한순간도 제게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견디기 힘든 시험 때문에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정욕에 시달리지 않게 하소서.

아버지는 저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오니 저를 시험하소서. 저의 영혼을 지키시고, 시험의 때에 힘을 주시어 그 시험을 이기게 하소서. 저를 해하려고 원수가 궁리해낸 술수術數가 변하여 제 영혼의 구원과 더욱 풍성한 주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저의 산성山城이 되어주시고, 제게 가까이 계시옵소서. 특히 고난의 무거운 짐이 저를 짓누르고 의지할 사람이 거의 없을 때 그리하소서.

궁핍함이 극심할 때 저의 신실한 친구가 되어주소서. 제가 시험을 당하여 잠시 아버지의 위로 없이 지내야 한다 할지라도 저의 짐을 모두 아버지께 맡겨 능히 견디게 하시고, 아버지의 귀하신 아들이 십자가에서 버림받으신 것을 기억하게 하소서.

아버지께서 지극히 사랑하고 기뻐하신 아들은 친구들도 없이 무한한 고통 가운데 계실 때에 오직 아버지만을 생각하였으나 아버지에게마저 버림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