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3.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주인님 나를 바칩니다

21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어도 슬퍼하지 않게 하소서

만유를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모든 선한 것을 베푸시는 나의 주인님, 예수 그리스도시여! 군병들이 주님의 옷을 벗기고 조롱하며 주님의 옷을 찢는 것을 견디셨으니, 주님을 경배하고 주님께 감사합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 군병들이 잔인하게도 주님의 옷을 모두 벗겼기 때문에, 주님께는 벌거벗음을 가려줄 지극히 작은 천 한 조각도 남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몸을 싸서 정성스럽게 매장할 때 사용될 수의壽衣로 쓰일 만한 세마포 속옷도 남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몸이 벌거벗겨진 채 매장되지 않으려면 누군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에게 하듯이 수의를 제공해야 할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아! 그 군병들, 아니 그 치욕스러운 인간쓰레기들의 불타는 탐욕! 그 저질스러운 경비병들의 수치스러운 탐심! 그들은 악한 탐욕에 이끌려 예수님의 마지막 소유물조차 찢어서 그들의 약탈품에 보태는 뻔뻔스러운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네 조각으로 나누어 하나씩 가졌습니다.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주님의 속옷은 찢어서 나눌 수 없기에 서로 차지하려고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옷을 벗기고 가증스러운 짓을 저지른 그 못된 자들은, 벌거벗겨진 채 십자가에 달려 계신 주님을 털끝만큼도 동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 조그만 천 조각도 돌려드리지 않았고, 슬퍼하는 주님의 어머니께 술 달린 주님의 옷을 위로의 뜻으로 건네지도 않았습니다. 장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귀의 힘에 이끌려 잔인무도한 신성모독을 자행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예수님! 사악한 자들의 만행에 대해 주님은 전혀 응수하지 않고 침묵 가운데 참으셨습니다. 옷조차 빼앗기신 주님을 보면서 저는 저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분명히 배웠습니다. 주님은 제가 마땅히 저의 것이 되어야 할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차라리 이 세상의 것을 포기하는 편을 택하기를 원하십니다.

제가 생각할 때 주님의 옷은 옷감이 고급스럽거나 밝게 채색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옷처럼 수수하고 소박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옷은 나사렛 사람들이나 고대古代 선지자들의 옷 유형에 따라 단순하게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주님의 옷은 노련한 바느질꾼이 만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어머니가 성령의 인도 가운데 친히 바느질해서 만들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그녀가 이웃집 일을 해주고 번 돈으로 그 옷을 샀을지도 모릅니다.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요 참 하나님과 참 인간이신 예수님! 주님은 이렇게까지 낮아지셨습니다! 태어나실 때 주님께는 몸을 덮을 만한 변변한 누더기가 없었고, 돌아가실 때도 아무런 옷이 없었습니다.

이 땅에 오실 때 주님의 연약한 어린 몸은 좁은 구유에 누우셨고, 주님이 창조하셨던 이 세상을 떠나실 때에 주님의 머리 둘 곳은 오직 십자가뿐이었습니다. 주님은 가난한 자로 이 세상에 오셨고, 이제 옷조차 빼앗기고 추방당한 자로서 이 세상을 떠나려고 하십니다. 태어나실 때 천에 둘둘 감기셨던 몸이 이제 죽을 때는 못과 창에 찔리셨습니다.

내 영혼아!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애통의 눈물을 흘리고, 주님의 인내심을 생각하며 그분을 본받아라. 필수품으로 생각되는 것이나 네가 정말로 갈망하는 것이 네게 허락되지 않을 때 더욱 인내심을 발휘하라. 적은 것으로 살아가며 초라하고 싼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운다면 너는 전혀 불평 없이 큰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주 예수님! 주님은 왕들 중에서 가장 가난하면서 가장 부유한 분이십니다. 가장 가난하신 이유는 옷까지 빼앗기고 친구들에게 버림받으셨기 때문이며, 가장 부유하신 이유는 모든 영적 은사들이 주님 안에 충만히 거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많은 미덕美德들 중 한 가지라도 이 불쌍한 종에게 허락하시어 주님이 볼 때 벌거벗은 부끄러운 자가 되지 않도록 도우소서. 그리하시면 제가 혼인 잔치에 참석했으나 예복을 입지 않아 성도의 교제에서 즉시 쫓겨난 자처럼 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 조각으로 찢어진 주님의 옷을 생각할 때마다 저의 죄를 아파하는 유익한 슬픔이 제 마음을 찢게 하소서. 지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든, 미래의 영광에 대한 소망 때문이든, 과거의 죄에 대한 슬픔 때문이든, 주님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와 사랑 때문이든 제 마음이 주님의 옷처럼 찢어지게 하소서.

호지 아니한 주님의 속옷이 상징하듯이 제가 평안의 유대紐帶 안에서 형제 사랑의 연합을 지키게 하시고, 분쟁의 씨앗을 모두 제거하여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게 하소서. 이 세상의 소란 속에 빠지지 말고,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말고, 무익한 한담閑談으로 시간을 보내지 말며, 오히려 주님과 함께 순수한 삶을 은밀히 살아가게 하소서.

제가 세상의 즐거움을 갈망하거나 물질을 소유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소서. 이 땅에 계실 때 주님은 세상의 물질을 소유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살아가는 데 필요해서 사용하신 것처럼 보이는 작은 것조차 군병들이 벗겨서 나누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이로써 주님은 억울한 일을 당한 모든 사람들에게 인내의 모범을 보이셨으니, 이는 그들이 소유물을 잃은 것에 대해 지나치게 슬퍼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