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자비로우신 인간의 창조주요 인간의 상처 입은 본성의 치료자이신 나의 주인님, 예수 그리스도시여! 십자가에 달리셔서 옷이 벗겨지는 수모를 견디셨으니, 주님을 경배하고 주님께 감사합니다. 주님은 먹잇감을 눈앞에 두고 포효咆哮하는 맹수 같은 무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옷 벗김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의 몸에서 거칠게 벗겨진 옷은 군병들에게 일종의 상품으로 주어졌습니다. 주님은 벌거벗겨지시고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신 채, 군병들이 주님의 몸을 흔드는 고통과 부끄러움을 다 견디셔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을 비난하고 조롱했습니다. 살던 곳에서 쫓겨나 갈 곳도, 가진 것도, 위로해주는 사람도 전혀 없는 방랑자처럼, 주님은 거기에 서 계셨습니다.
타락 전에 에덴동산에서 거닐었던 첫 아담이 벌거벗었듯이 주님도 십자가에서 벌거벗으셨으니, 이는 첫 아담의 죄로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회복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잃어버린 무죄성無罪性을 첫 아담에게 다시 되찾아주고, 선행의 옷을 그에게 다시 입혀주고, 영생永生을 그에게 선물하기 위하여 주님은 자신의 옷이 벗겨지는 것을 허락하시고, 슬픔과 고난을 스스로 선택하시고, 결국에는 지극히 고통스러운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나의 주인님! 우리의 구원을 이루려는 열망에 늘 불타신 주님께서 주님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십자가의 단단한 나무에 두 손과 두 발을 가져다 대셨으니,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거센 망치질로 날카롭고 단단한 못이 주님의 손과 발을 뚫고 지나가는 것을 견디셨으니, 주님을 찬양합니다. 망치질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기 때문에 마음이 돌같이 굳은 사람들까지도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큰 망치에 난타당한 굵은 못이 주님의 손과 발을 관통했을 때, 정맥이 터지고 주님의 보혈이 상처들을 통해 줄줄 흘렀습니다. 북에 가죽 막을 달 때 상하좌우로 쫙 펴서 달듯이, 사악한 자들은 주님의 온몸을 거칠게 상하좌우로 펴서 십자가에 달았습니다.
주님은 악한 자들이 주님의 손과 발을 십자가에 단단히 못 박도록 허락하셨으니, 이는 아담이 그의 사망의 손을 뻗어 금단禁斷의 열매를 따 먹은 빚을 갚기 위하여 주님의 거룩한 손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보혈은 지극히 오랜 세월 동안 갚지 못하고 쌓여 있던 빚을 전부 갚으셨습니다.
나의 주인님! 높이 들리어 십자가에서 그토록 오랜 시간 매달려 계셨으니, 주님을 찬양하고 높입니다. 주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무 십자가를 경멸하고 저주했으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숲 속에서 자라는 다른 모든 나무들과 달리 주님의 나무 십자가를 거룩하게 여깁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세 시간 또는 그 이상으로 오랜 시간 십자가에 매달려 계시어 십자가의 놀라운 은혜를 이루셨으니, 이 은혜는 온 세상에 유익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땅 위에서 높이 들리셨습니다. 이는 경건하고 신실한 자들의 마음이 부패한 쾌락의 바다에서 떠돌지 않고 주님을 향하도록 이끄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주님께 헌신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주님의 슬픔과 고통에 더욱 공감하도록 만드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볼 때, 주님을 더욱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주님은 자신이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완전히 정복하셨음을 온 천하에 확실히 보여주시기 위하여 땅 위에서 높이 들리셨습니다. 주님은 죄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시고, 진실로 회개하는 모든 자들을 온전히 용서하시기 위해 땅 위에서 높이 들리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평안과 화합을 선사하고 만물을 새롭게 하시려고 높이 달리셨습니다.
오, 예수님의 신실한 종이여! 그대의 두 눈을 들어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그대의 하나님, 그대의 구세주를 보며 슬퍼하라. 그대가 사랑하는 분이 벌거벗겨진 채 십자가에 달려 계신다.
그분은 그대의 눈길을 원하신다. 그분의 두 발이 못 박히어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그대가 그분께 나아오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사랑으로 가득한 두 팔을 그대를 향해 벌리고 계시며, 자신의 상처를 숨기지 않고 그대에게 보여주신다. 그분은 고개를 숙여 그대에게 입 맞추시고, 그분의 은혜 가운데 그대를 영접하시고, 그대의 모든 죄를 즉시 용서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용기를 내라. 조용히 십자가로 가서 거기에 매달리신 분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그분을 만지고, 그분을 따뜻하게 껴안고, 그분을 굳게 붙들고 경건하게 입 맞추라. 그분 앞에 엎드려 그 거룩한 땅을 끌어안으라. 그분 앞에서 떠나지 말라.
어쩌면 그분의 보혈이 한 방울이라도 그대에게 떨어질지 모른다. 어쩌면 그분의 말씀이 그대에게 들릴지 모른다. 어쩌면 그분의 고통이 끝나는 것을 그대의 두 눈으로 보게 될지 모른다.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영접한 땅이 그대까지도 영접하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께서 묻히신 곳이 그대의 안식처가 되기를 원하노라. 이제 그대가 그분과 한 영靈이므로 그대의 몸이 그분이 묻히신 곳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를 위해 슬퍼하는 것이 마땅하니 깊이 슬퍼하고, 그대 마음속의 은밀한 방으로 들어가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눈에 그대가 슬퍼하며 헌신하는 제자로, 감사하며 사모하는 제자로, 자신을 온전히 드린 제자로, 사랑 가운데 그분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제자로 보여야 할 것이다.
“온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온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노라.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니 그분과 함께 죽는 것이 내게는 최고의 유익이라!”(갈 6:14 ; 빌 1:21 참조)라는 고백이 그대의 입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그대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자랑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라. 그대의 공로에 의지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대의 구원과 구속救贖이 오직 십자가에만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모든 소망을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두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 사함이 주어진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공로의 보고寶庫가 발견되고 의인이 보상을 받는다. 그리스도는 각 사람의 공과功過에 따라 응분의 상벌賞罰을 내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모범을 따르라. 그분의 모범을 따르려면 쓸데없는 이 세상 짐들을 내려놓고, 그대의 내적 자유를 방해하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라. 경건을 위한 집중을 방해하는 모든 헛된 것들과 세상의 근심걱정에서 벗어나 가식假飾 없는 순수한 진리에 따라 살아라. 교만에 빠지지 말고 겸손하고, 덧없는 물질에 현혹되지 말라.
그러면 벌거벗겨져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진정으로 본받게 될 것이며, 고난당하신 구세주를 향한 불타는 사랑의 힘으로 사람들의 모욕과 비방을 능히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대는 존귀한 자가 될 것이며, 그대의 십자가에 오를 수 있는 충분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그대를 경멸하고 무시할 때 기뻐하는 법을 배워라.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더욱 가슴 아파하면서 그들이 선한 존재가 되도록 기도해주어라. 그대 자신이 경멸과 무시를 당해야 마땅한 자라고 여기고, 그대의 원수들이 구원받기를 진정으로 갈망하라.
그리고 사람들을 너무 믿지 말라.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돕는 신실한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 놀라지 말고 분노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는 친구들에게 버림받고 원수들에게 둘러싸이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친히 겪으셨다.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선善을 베푸신 분에게 돌아온 것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배은망덕이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분을 의지하라. 그분만이 우리를 인도하고 가르치실 자격이 있으시다. 십자가에 달리신 분에게서 떠나지 말고 그분 가까이 머물라. 그리하면 시련의 때에 그분께 도움을 받아 그대의 원수들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 자리를 마련해 드려라. 그리고 하나님 은혜를 받아들이기 위해 진실한 회개와 겸손으로 준비하라. 예수님의 고통과 상처가 주는 달콤한 위로를 받아서 누려라. 오로지 예수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그대가 모욕당하고 완전히 무시당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알아라.
경건을 위한 집중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멀리하기 위해 고독한 삶의 길을 선택하라. 십자가에서 위로를 얻고, 육욕肉慾에 저항하고, 사소한 잘못들을 범하지 말고, 쓸데없는 잡담에 빠져들고 싶은 유혹에 굴복하지 말고, 그대와 상관없는 일에 끼어들지 말며, 그대의 내면적 복福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
웃고 떠드는 환락歡樂에 빠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행동이 신중하지 못한 것도 경건생활의 규례에 어긋난다. 이런 행동들이 잘못되었음을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고난’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가르쳐주는 것에 따라 날마다 살아가는 자는 복되도다. 이런 사람은 다른 성도들보다 더욱 빨리 성장할 것이고,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을 것이며 그 안에서 끝없는 기쁨을 맛볼 것이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소서. 아버지의 독생자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공로를 보시고, 그분의 손발을 관통한 못을 보시고, 붉은 피로 덮인 그분의 거룩한 몸을 보시고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제가 많은 죄에 매여 있으니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스도께서 저의 허물을 모두 씻어버리기 위해 상처를 입으셨으니, 그분이 저의 모든 죄 때문에 쌓인 아버지의 진노를 풀어드리고 저를 대신하여 아버지께 책임을 지실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볼모로 아버지께 드리며, 그분을 저의 변호사로 선임하며, 그분을 저의 중보자로 삼으며, 그분을 제 주장의 대변인代辯人으로 인정합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신다면, 그리스도께서 제가 태만 때문에 이루지 못한 모든 것을 이루시고 제가 범한 모든 잘못을 바로잡으실 것입니다.
지극히 자비로우신 아버지! 아버지는 예수님이 드리는 말씀을 기꺼이 들으십니다. 그러하오니 그분의 놀라우신 사랑과 저의 영원한 구원을 갈망하는 큰 소원을 보시고, 저로 하여금 소망과 위로를 얻게 하소서. 이 소망과 위로가 저에게 이 땅에서는 지극히 유익한 것이고 죽음 후에는 영원한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임을 제가 깨닫게 하소서.
하나님께 사랑받는 아들이시여! 선하고 온유하신 예수님이시여!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신을 낮추어 죄 없는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시어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그 몸을 십자가의 제단에 바치셨습니다. 주님의 종인 제가 지금 구하오니, 저를 긍휼히 여기사 용서와 은혜를 내려주소서.
주님의 선하심과 십자가 고난의 무한한 공로에 근거하여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되, 알고 지은 것이나 모르고 지은 것이나 최근 것이나 오래된 것이나 전부 용서하소서.
주님의 공로는 인류의 사악함을 모두 덮고도 남을 정도로 넘칩니다. 저의 허물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주님의 풍성한 속죄贖罪는 그 허물을 모두 씻어버리기에 충분합니다. 이 사실을 제가 잘 알기에 십자가의 보호에 의지하여 지금 주님 앞에 나와 더 큰 자비를 구합니다.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함으로 구하오니, 저를 고치시어 영원한 구원으로 인도하소서.
저는 십자가의 표적을 존귀하게 여기고, 십자가의 기旗를 영화롭게 하고, 십자가의 발에 입 맞추고, 십자가에서 떨어지는 심판을 자청自請합니다. 불쌍하기 짝이 없는 저의 말을 들으시고, 쫓겨 도망 다니는 저를 받아주시고, 회개하는 저의 마음을 치유해주시며, 죄인인 저를 의롭다 하소서. 저는 다시 주님의 은혜 안에 잠기기 전에는 주님 곁을 결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의 주 예수님! 간절히 구하오니, 제가 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소서. 주님의 팔로 저를 감싸서 십자가로 끌어올리소서. 주님이 어디로 이끄시든 간에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제가 세상의 모든 근심걱정에서 벗어나 주님 곁에 가까이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본받아 마치 이 세상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자처럼 되어 가난과 벌거벗음과 무명無名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제가 육신의 정욕에 굴복하지 않도록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제 육신에 불어넣으소서. 제가 게으름에 빠지지 않도록 제 두 손을 찌르소서. 제가 수고와 슬픔을 굳건하고 담대하게 견딜 수 있도록 저의 두 발을 못 박으소서.
주님의 못이 저의 심장의 중심을 관통하여 거기에 ‘구원의 상처’를 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저는 그 ‘구원의 상처’와 저의 죄에 대한 통회痛悔 때문에 눈물을 강물같이 흘리며 주님의 사랑 안에 푹 잠길 것입니다.
제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 무엇보다도 더 기뻐하고 더 존귀하게 여길 수 있도록, 제 안에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슬픔을 가득 채우시고 저의 헌신이 장성長成한 분량에 이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