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주인님 나를 바칩니다

16 지체들의 비판을 달게 받게 하소서

생명의 주主요 정의의 표준이신 나의 주인님, 예수 그리스도시여! 살인과 반역죄를 범하여 사형을 면할 수 없었던 자는 풀려나고 오히려 주님이 부당하게 사형선고를 받으셨지만 분노를 터뜨리지 않으셨으니, 주님을 경배하고 주님께 감사합니다. 살인자를 풀어주고 무고한 분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은 정말로 가증스러운 결정이었고 지극히 경멸스러운 ‘주고받기’exchange였습니다.

백성 중에서 큰 소동이 일어났기 때문에 재판관은 군중의 광포를 가라앉힐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재판석으로 돌아와 거기서 치욕스러운 판결을 내렸습니다.

즉, 죽을죄를 범하여 사형을 당해야 마땅한 강도 바라바를 풀어주고, 오히려 아무 죄가 없는 예수님을 지극히 수치스러운 십자가형에 넘기라고 판결하였습니다.

아, 슬픈 일이다! 이 세상의 판결은 부패했다! 불경건한 자들이 칼자루를 쥐면 정의正義가 무한히 유린당한다! 의로운 분이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그분을 풀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진실한 분이 속이는 자들에게 넘겨졌고, 거룩한 분이 거룩하지 못한 자들에게 채찍질당하셨다.

무고한 분이 형벌에 넘겨지고, 범죄자는 풀려났다. 나사렛 예수 대신 바라바가 결박에서 풀려났다. 늑대 대신 어린양이, 범죄자 대신 거룩한 분이, 지극히 악한 자 대신 지극히 선한 분이 희생되셨다. 참 하나님 대신 무법자가 석방되었다. 세상은 빛 대신 어둠을, 선 대신 악을, 생명 대신 죽음을, 정금正金 대신 쓰레기를, 진주 대신 조개껍질을, 고결한 분 대신 수치스러운 자를 택하였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 슬퍼하지 않을 자가 누구일까? 사악한 선택을 한 무리를 향해 분노하지 않을 자가 누구일까? 이런 판결을 내린 재판관을 비판하지 않을 자가 누구일까?

재판관이 자기 손을 씻으며 사람들 앞에서 변명을 늘어놓으며 “로마 황제가 두려워 그렇게 했노라”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실상 그는 무리의 끈질긴 요구에 굴복한 것이다. 그가 죄를 온전히 면할 수 없는 것은, 유대인들이 시기심으로 예수님을 자기에게 넘겨주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무고하고 의롭다는 것을 알았다면 빌라도는 그분에게 사형을 선고하지 말고 차라리 이 세상의 일시적인 권세와 명예를 다 포기하는 편을 택했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죽임으로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잃는 것이 그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불의한 자로 판결 받으신 ‘심판주’께서 그분의 위엄 가운데 다시 오시어 거룩하지 못한 불신자들을 심판하시는 날에 그 심판이 얼마나 무섭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신성모독적인 유죄판결을 받으신 것을 한탄한 경건하고 신실한 자들은 그 심판 날에 기뻐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모든 고통과 멸시와 천대를 견딘 모든 자들은 그 심판 날에 기쁨과 평안을 누릴 것이다.

빌라도 총독에게 부당한 재판을 받아 치욕스러운 십자가형을 받으신 거룩하신 사랑의 주님! 믿음의 지체들이 저에게 어떤 비판을 쏟아 붓더라도 제가 겸손히 받아들이게 하소서.

저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로 응대하거나 윗사람을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이 보여주신 인내심의 모범을 따라 고결하게 침묵하게 하소서. 제 윗사람이 저를 짓밟는다 해도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께 모든 판단을 맡기게 하소서.

종은 그의 주인보다 크지 못한 법입니다. 만인의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토록 부당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아무 죄가 없으신 주님께서 광포한 원수들에게 아무 저항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하오니 여러 면에서 자주 잘못을 범하는 제가 믿음의 지체들의 비판을 달게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자비하신 예수님! 복종의 굴레와 교정敎正의 막대기를 제가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도우소서.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찾아와도 언제나 주님의 고통과 눈물을 기억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