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롬 8:20
그는 피조물이 고대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그 대상과 반대되는 특성을 들어 밝힌다. 썩어짐의 종 노릇 하는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전적으로 회복되기까지는 새로워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피조물들은 자기들이 새롭게 되기를 구하면서 하나님 나라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가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한다’고 말한 이유는 그것들이 견고하고 안정되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이고 쉽게 변하며 빨리 없어져버리기 때문이다. 바울이 허무한 것과 완전한 상태를 비교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 피조물들은 의식이나 지각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뜻’(voluntas)이라는 것을 자연스러운 성향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사물의 모든 본성은 그 자연스러운 성향에 따라 스스로를 보전하고 온전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썩어짐의 종 노릇 하는 만물은 자연의 목적에 반하고 그것과 반대되는 폭력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의인법(擬人法)을 사용해서(카타 프로소포포이안, kata prosopopoian) 바울은 세상의 모든 부분이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는 우리가 이 세상이 쉽게 변하고 동요하는 것을 보고서도 마음을 더 높은 차원에 두지 못할 경우,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을 부끄러워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는 모든 피조물 안에 있는 순종의 실례를 우리 앞에 제시한다. 그리고 그 순종이 ‘소망’(우리말 성경에는 ‘바라는 것’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 역자 주)에서 일어난다고 덧붙인다.
해와 달과 모든 별들이 일정한 궤도에 따라 신속하게 운행하는 것, 땅이 그 열매를 맺는 면에서 부단히 순종하는 것, 공기가 지치지 않고 움직이는 것, 물이 기꺼이 흐르고자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소망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피조물들에게 그에 맞는 과업을 주셨다.
그러나 단순히 그분의 뜻을 행하라는 정확한 명령만을 주신 것이 아니라 새롭게 될 것에 대한 소망 또한 그 내면에 심어주신 것이다.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이 세상을 떠받쳐주지 않는다면, 아담의 타락 이후에 생긴 슬픈 혼돈 속에서 이 세상의 모든 복잡한 절차들은 거의 매순간 그 기능을 못하게 될 것이고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들은 고장이 날 것이다.
그러므로 감추어진 본능이 생명 없는 피조물들 속에서 하는 일보다 성령의 증거가 하나님의 자녀들 속에서 하는 일이 덜 효과적이라면, 그것은 지극히 수치스러운 일일 것이다.
아무리 피조물들이 천성적으로 어떤 다른 길로 가고자 할지라도, 그것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 왜냐하면 피조물들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에게 더 나은 상태에 대한 소망을 주셨기 때문에, 그것들은 그 소망으로 스스로를 유지하며 자기들에게 약속된 썩지 아니함이 계시되기까지 계속 사모하는 것이다. 바울은 앞에서 피조물들이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 것처럼, 의인법을 사용해서 그것들이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