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8장

로마서 8장 6절 칼빈 주석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에라스무스는 ‘생각’cagitatio이라는 단어를 ‘감정’affectum이라고 번역했고, 벌게이트 역에서는 ‘사려’prudentiam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바울의 ‘토 프르호네마’(to prhonema)가 모세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figmentum이라고 부른 것(창 6:5)과 같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 단어가 이성(理性)과 분별력에서부터 감정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지각을 포함한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그러므로 내가 볼 때는 ‘생각’cogitatio이라는 번역이 본문에 더 잘 들어맞는 것 같다.

바울이 ‘가르’(gar)라는 불변화사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내가 확신하건대 그것은 확증적인 기능을 할 뿐이다. 왜냐하면 여기에 일종의 양보 개념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육신에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짧게 정의(定義)를 내린 후에, 이제 그는 자기를 육신에 내어맡긴 사람들에게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지 덧붙인다. 이런 식으로 그는 대조법을 사용해서, 육신에 거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은혜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삶의 전 과정을 통해서 사망을 향해 정신없이 돌진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목할 만한 구절이다. 본성이 이끄는 대로 따라 살면 사망에 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배우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 혼자 힘으로는 파멸만 꾀할 뿐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곧바로 대조되는 구문을 덧붙인다. 이는 혹시 우리의 어떤 부분이 생명으로 향하고 있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능력을 나타내시기 때문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육신에서는 한 점의 생명의 불꽃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은 영의 생각을 생명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것이 생명을 주기 때문에 혹은 생명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평안’이라고 할 때 그는 히브리 어법에 따라 행복에 관계된 모든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우리의 복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구원이 행위에 있다고 생각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시고 결국은 그분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새롭게 하심으로써 그 구원을 완성하시지만, 우리 구원의 유일한 원인은 그분의 선하고 기쁘신 뜻이기 때문이다. 그 뜻에 따라 그분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자로 만드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