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8장

로마서 8장 5절 칼빈 주석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바울이 육신과 영을 이렇게 구별해서 소개하는 것은 그가 앞에서 언급한 내용, 즉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하고 나서 순전한 삶을 살고자 애쓰는 사람들에게만 그리스도의 은혜가 적용된다는 것을 확증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적절한 위로의 말씀으로 신자들에게 힘을 북돋움으로써 그들이 여러 가지 연약함을 의식하고 절망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가 신령한 삶을 사는 사람들만 저주를 면하는 것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전 인류에게서 구원의 소망을 끊어버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 세상에서 천사와 같은 순전함을 소유하고 있어서 육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바울은 ‘육신에 있는 것’과 ‘육신을 따라 행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정의(定義)를 덧붙일 필요가 있었다.

처음에 그는 아주 정확한 용어를 사용해서 이 둘을 구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나중에 보게 될 테지만, 그의 의도는 신자들이 여전히 육신에 매여 있을지라도 그들에게 확실한 소망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육신의 정욕에 대한 제어를 느슨하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오히려 성령의 인도하심에 스스로를 맡겨야 한다.

‘육신적인’ 사람은 육신의 일에 ‘관심을 쏟거나’ 그것을 깊이 생각한다고 말함으로써, 바울은 천상(天上)의 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전적으로 세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육신적인 사람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나는 ‘프로누신’pronusin을 좀더 넓은 의미를 가진 ‘생각하다’(cogitant)라는 말로 풀이했다. 이는 육신의 유혹에 빠져서 부패한 욕망에 마음과 열정을 쏟는 사람들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다는 점을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반절에서 그는, 만일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의를 생각하도록 힘을 더해주신다고 느낀다면 확실한 소망을 가지라고 격려한다. 성령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은 그곳이 어디든 거기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소멸되고 육신의 왕국이 득세하는 곳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나는 전에 했던 권면의 말을 여기서 짧게 반복하고자 한다. ‘육신에 있는 것’ 혹은 ‘육신을 따르는 것’은 중생의 은혜가 전혀 없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흔한 표현을 쓰자면,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그런 상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