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롬 7:7
우리가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율법으로부터 반드시 해방되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본래부터 율법에는 우리를 강요해서 죄를 짓게 하는 악한 어떤 것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율법에 대한 그러한 이해는 지나치게 터무니없는 생각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그 견해를 논박하기 위해 나선 것은 잘한 일이다. 그가 ‘율법이 죄인가’라고 물은 것은 ‘율법이 죄를 낳는다고 해서, 죄에 대한 책임을 율법에 돌려야 하는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죄는 율법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죄의 원인은 우리의 육신에서 나오는 부패한 욕망이다. 그리고 우리가 죄를 알게 되는 것은, 율법을 통해 우리에게 선포된 하나님의 의에 대한 지식으로 말미암아서이다. 그
러나 율법이 없었다면 옳고 그른 것 사이의 구별이 전혀 없었을 것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율법이 없었다면 우리는 너무 무디어서 우리 자신의 부패함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자기 만족에 빠져서 완전히 판단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이는 앞 문장에 대한 설명이다. 이 설명을 통해, 그는 앞에서 언급한 죄에 대한 무지가 자기 자신의 정욕을 감지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고의적으로 바울은 한 종류의 죄에 대해서만 언급하는데, 그 죄는 특별히 위선(僞善)으로 가득 차 있으며 나태한 방종 및 거짓된 자신감과 늘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 외적인 행위들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판단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일은 결코 없다. 사실 그들은 사악한 지혜나 그와 비슷한 책략들을 정죄하도록 강요당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정직하고 올바른 마음을 높이 평가하지 않고서는 할 수가 없다. 그러나 탐욕의 죄는 좀더 은밀하고 깊이 감추어져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인간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보고 판단하는 한 탐욕에는 결코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탐욕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자랑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이 탐욕의 죄가 자기 마음에 잠재해 있지 않다고 생각할 만큼 스스로에 대해 매우 당당했다.
그가 잠시 잘못 생각한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의가 자기의 탐욕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는 사실을 그가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않은 탐욕이 율법에 의해 금지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결국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점을 인식했다.
바울이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표현에 율법 전체를 포함시켰다고, 어거스틴은 말한다. 제대로 이해한다면 이 말은 사실이다. 십계명에서 우리가 이웃에게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진술할 때, 모세는 탐욕에 관한 이 금지 조항을 덧붙였다.
이 조항은 그가 앞에서 금했던 모든 행동들을 언급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앞서 언급한 그 계명들에서 모세가 우리의 마음에 있는 모든 악한 욕망들을 정죄했다는 것은 아주 명백하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어떤 것을 계획하는 것과 그것을 하고자 하는 열망에 미혹을 당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혀 동의하지 않더라도 부패한 욕정이 우리를 부추겨서 악을 행하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계명에서 우리에게 굉장한 온전함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여기에 나타난 바울의 사상이 평범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내가 말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로마의 시민법에서는 일어난 일뿐 아니라 그 일을 하고자 한 의도consilia를 공공연하게 벌한다. 철학자들 또한 악덕과 미덕을 미세하게 구별해서 그 두 가지 모두 마음에in animo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계명을 통해 우리 탐욕의 핵심을 건드리신다. 탐욕은 의지보다 더 깊숙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악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철학자들도 이 탐욕을 너그럽게 봐줄 뿐만 아니라, 오늘날 교황주의자들도 중생한 자에게 있는 탐욕은 죄가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은 탐욕이라는 이 감추어진 질병에서 자기 죄의 근원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탐욕으로 괴로움을 당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주시지 않는 한 ‘유죄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확실한 우리의 동의를 얻는 ‘부패한 욕정’과 우리의 마음을 미혹하고 부채질해서 죄를 짓게 하려 하지만 중간에 그만두는 ‘탐욕’ 사이의 차이를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