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롬 7:2-3
바울의 은유는 ‘우리가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기에, 율법은 더 이상 그것이 가진 권리를 사용해서 정식으로 우리를 주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는 다른 방법으로 이 점을 입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결혼의 실례는 그의 주제를 설명하는 데 아주 적합했기 때문에, 그는 자기의 요점을 확증하는 증거를 제시하는 대신 이 은유를 도입한 것이다. 이 문장에서 서로 비교되고 있는 부분들이 완전하게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이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강한 표현을 씀으로써 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일부러 약간의 변화를 주고자 했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은유의 순서를 그대로 유지하려면, 문장의 후반부에서 ‘남편이 죽은 후에는 결혼의 약정(約定)에서 벗어나느니라’라고 말했어야 한다. 우리에게 남편의 자리를 차지하는 율법은 우리에 대하여 죽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의 권세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만일 바울이 율법이 죽었다고 말했더라면, 그 거친 표현이 유대인들의 비위를 건드렸을 것이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는 ‘우리가 율법에 대해 죽었다’고 돌려서 말한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바울이 지금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논증을 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그 해석은 너무 억지스러운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앞에서 언급한 단순한 해석이 더 마음에 든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논증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 여인은 법에 의해서 자기 남편에게 매여 있기 때문에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남편이 죽은 후에, 그 여인은 그 법의 속박으로부터 자유하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남자와 자유롭게 결혼할 수 있다.”
이제 이 은유를 다음과 같이 적용할 수 있다. “율법은 우리의 ‘남편’이었다. 율법이 우리에 대하여 죽기까지 우리는 그 율법의 멍에 아래 매어 있었다. 율법이 죽은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그분께로 취하셨다.
즉, 그분은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해방시키셔서 자신과 하나 되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 연합되었으므로, 그분께만 붙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부활 이후에 영원한 것처럼, 지금부터는 우리도 그분과 이혼하는 일이 절대로 없을 것이다.”
여기서 ‘법’이라는 말은 매번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 한번은 결혼에 대한 상호 권리를 의미하고, 다른 한번은 남편이 자기 아내에 대해 가지는 권위를 의미하며, 나머지 한번은 모세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바울이 여기서 특별히 모세가 전해준 율법의 기능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통해 무엇이 옳은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셨고 우리 삶의 길잡이가 되는 방향을 제시해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십계명과 관련해서 율법이 폐해진다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영원히 동일하게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여기에 언급된 ‘법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 율법이 가르치고 있는 의(義)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율법의 엄격한 요구와 거기에 따르는 저주로부터의 자유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율법이 처방해주는 선한 삶의 규범이 폐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자유와 반대되는 율법의 특성, 즉 절대적인 완벽함에 대한 요구가 폐해진다.
우리는 율법이 요구하는 그 완벽함을 나타내 보일 수 없기 때문에, 율법은 영원한 사망이라는 형벌 아래 우리를 묶어두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이 결혼의 권리가 가지는 진정한 특성을 결정짓고자 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는 여인을 그 남편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원인들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기서 결혼 권리에 대한 어떤 결정적인 교리를 찾으려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