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6장

로마서 6장 23절 칼빈 주석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일부 해석자들은 사망을 군인들에게 할당되는 하루치의 식량으로 비유하면서, 바울이 지금 죄인들에게 지급되는 삯의 불쾌한 특성을 비꼬듯이 언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삯’이라는 헬라어가 군대에서 지급되는 하루치의 식량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물고기가 낚싯바늘에 걸리듯 죄의 미끼에 걸려 멸망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의 분별없는 욕망을 완곡하게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그 단어를 ‘삯’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왜냐하면 분명 사망은 사악한 자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되고도 남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앞 절에 대한 결론이다. 이를테면 앞 절에 대한 에필로그 같은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같은 개념을 다른 말로 거듭 언급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죄에 대한 공포를 갑절로 늘림으로써 그는 죄를 더욱더 혐오의 대상이 되게 하려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은사는 … 영생이니라

영생을 주어로 보고 하나님의 은사를 술어로 보아, 이 문장을 ‘영생은 … 하나님의 은사이니라’라고 번역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게 번역하면 앞의 문장과 대조되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미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던 것처럼, 죄는 사망을 낳을 뿐이다.

이제 그는 우리의 칭의와 거룩함이라는 하나님의 이 은사가 우리에게 영생이라는 복을 가져다준다고 덧붙인다. 이 문장을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망의 원인이 죄인 것처럼, 우리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은사인 의는 우리에게 영생을 회복시켜준다.”

우리의 구원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순전한 선하심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이 구절에서 아주 확실하게 추론할 수 있다. 바울은 앞의 문장과 균형을 맞추어서 ‘의의 삯은 영생이니라’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생명을 얻는 것이 우리 자신의 공로로 말미암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를 통해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은사 하나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우리가 하나님 아들의 의로 옷 입었으므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도 하고 성령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거룩함으로 새롭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행여 자부심을 가질까봐, 그렇게 되지 않도록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이라는 표현을 덧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