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롬 6:19
본질이 아니라 형식에 관한 한, 바울은 사람들이 하는 방식을 따라서 이야기한다고 진술한다. 이렇듯 그리스도께서도 요한복음 3장 12절에서, 자신이 하늘의 신비를 말하지만 사람들이 땅의 일도 믿지 않는다고 지적하신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이 다루고 있는 주제의 위엄에 걸맞게 격조 높은 어조로 말씀하시지는 않는다. 이는 그분이 무지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이해 수준에 자신을 맞추셨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서두 형식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은 자유가 죄를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해준다는 비방의 말들이 얼마나 저속하고 사악한지 더 잘 입증하기 위해서이다. 동시에 그는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영적 은혜가 세상적인 자유보다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덜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처구니없고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일은 없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죄와 의를 비교함으로써, 나는 너희가 죄에 순종할 때 보여주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열정으로 의를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함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의 연약함을 고려해서 그러한 비교를 하지 않는다.
내가 너희를 최고로 관대하게 대한다 할지라도, 다음과 같은 정당한 요구는 너희에게 해도 분명 괜찮을 것 같다. 적어도 너희는, 너희가 죄를 섬길 때보다 더 냉랭하고 부주의한 태도로 의를 행해서는 결코 안 된다.”
사람이 말로 표현하는 것 이상으로 이해받기를 원할 때 말을 아끼는 것처럼, 바울은 여기서 자기의 충분한 의도를 진술하는 것을 피한다. 물론 그의 말이 굉장히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더 마음을 기울여서 의에 순종하라고 그들에게 권면한다. 왜냐하면 의는 죄보다 더 섬길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즉, “예전에 너희는 너희 모든 기능을 동원해서 죄에 순종했다. 그것을 보면, 너희 육신의 부패함이 너희를 얼마나 비참한 상태로 종 되게 하고 포로 되게 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는 면에서 그에 못지않은 열심과 기꺼움으로 임하라. 또한 선을 행하는 범위가 이전에 죄를 행할 때보다 더 넓어지게 하라.”
데살로니가전서 4장 7절에서 바울은 부정함과 거룩함을 대립되는 것으로 설정하는데, 여기서는 그것과는 다른 대구(對句)를 사용한다. 그렇지만 그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아주 분명하다.
그는 죄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부정不(淨)이고 다른 하나는 불법이다. 이 중에서 부정은 순결함과 거룩함에 반대되는 반면, 불법은 우리의 이웃을 부당하게 취급한 것을 가리킨다.
그는 또한 ‘불법’이라는 단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두 번 반복한다. 첫 번째 경우는 약탈과 사기와 위증과 온갖 종류의 부정한 행위를 의미하고, 두 번째 경우는 삶의 전반적인 부패를 가리킨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 같다. “너희는 너희 지체를 사악한 일들을 행하는 데 악용해서, 결국은 불법의 왕국이 너희 안에서 활개를 치는 지경이 되었다.”
나는 ‘의’라는 단어를 올바른 삶을 위한 법칙과 규범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그 의의 목적은 신자들을 거룩함에 이르도록 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스스로를 순결하게 바치도록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