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6장

로마서 6장 17절 칼빈 주석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롬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바울은 자기가 사용한 비유를 지금 다루고 있는 주제에 적용시킨다. 그의 독자들이 기억할 필요가 있었던 유일한 진리는 그들이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는 사실뿐이지만, 그는 여기에 감사를 덧붙인다. 그가 감사를 덧붙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도에서이다.

첫째, 그들이 죄에서 건짐을 받은 것이 그들 자신의 공로 덕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자비하심 덕분이라는 점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둘째, 그들이 드리는 이 감사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이 얼마나 큰지 깨달을 수 있도록 하고 결과적으로 그들이 죄를 미워하는 면에서 더욱 단호한 태도를 취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바울의 감사는 그들이 죄의 종이었을 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들이 죄의 종이기를 그만둔 후에 죄에서 건짐을 받게 된 것, 그것에 대한 감사이다.

그들의 이전 상태와 현재 상태 사이를 은연중에 비교하는 이 구절은 매우 그 어조가 강하다. 사도 바울은 은혜가 없을 때는 온 인류가 죄의 지배 아래 사로잡혀 있지만 은혜가 그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곧바로 죄의 왕국은 종식된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그리스도의 은혜를 비방하는 자들을 공격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죄를 짓기 위해서 율법의 속박에서 해방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의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그분께로 회복시키면, 율법은 그 지배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왕 노릇 할 때 우리가 죄에 복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은혜’라는 말에는 중생의 영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순종하여

여기서 또한 바울은 성령의 감추어진 능력과 외적인 율법의 조문을 비교한다. 그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율법은 위협과 협박으로 우리를 강요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것보다 훨씬 더 좋은 방법으로 우리의 마음을 빚으신다.”

이것은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의 지배에서 해방하신다면 그분은 우리로 마음껏 죄를 지을 수 있게 하시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악담을 무산시켜버린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고삐 풀린 망아지가 들판을 뛰어다니는 것처럼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않은 채 마음껏 방탕한 생활을 하도록 허용하시지는 않는다. 그분은 그들에게 합당한 삶의 방식을 제시하신다.

에라스무스는 이 교훈을 벌게이트 역을 따라서 ‘형식’이라는 말로 번역하는 쪽을 택했으나, 나는 바울이 사용한 ‘본’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모형’이라는 말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새겨놓으시는 의(義)에 대한 확실한 형상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율법에 정해진 규범과 상응한다. 우리의 모든 행동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율법의 규범이라는 틀에 따라 우리의 행동이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