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6장

로마서 6장 10절 칼빈 주석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계심이니 롬 6: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망의 멍에에서 영원히 자유하게 되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제 그는 이 진술을, 우리가 더 이상 죄의 폭정에 지배를 당하지 않는다는 자기의 선언에 적용시킨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궁극적인 동기가 무엇인지를 들어 이 선언을 입증한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멸하기 위하여 죽으신 것이다.

우리는 이 어구에서 그리스도를 어떤 식으로 언급했는지 또한 주목해야 한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죄를 그만 짓게 할 목적으로’ 죄에 대하여 죽으셨다고 진술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경우에 해당되어야 하는 표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죄 때문에’ 죽으셨다. 자신을 속죄물(안티루트론, antilutron)로 삼으심으로써 죄의 능력과 권세를 폐하기 위해서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한 번’ 죽으셨다고 말한다(히 10:14).

이는 그분이 자기의 몸을 한 번 드려 영원한 구원을 이루시고 자신의 피로 죄를 씻으심으로써 신자들을 영원히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자신과 구속자(救贖者) 사이에 공통의 유사점이 있도록(ut in nobis quoque mutua similitudo respondeat) 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 안에서 영적 죽음이 계속적으로 진행되기는 하지만, 우리는 엄밀히 말해서 한 번 죽는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아버지 하나님께 화목하게 하는 동시에 그분의 영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중생하게 하실 때, 그때 우리는 한 번 죽는 것이다.

그가 살아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계심이니

이 어구를 ‘하나님과 함께’라고 읽든 ‘하나님 안에서’라고 읽든 의미는 동일하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썩지 않는 불멸의 하나님 나라에서 죽을 운명에 지배받지 않는 삶을 사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썩지 않는 이 삶의 유형은 경건한 자들의 중생에서 드러나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유사함을 나타내는 ‘이와 같이’라는 단어를 기억해야 한다(우리말 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다음 절에 나온다 - 역자 주).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하늘에서 살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중생한 이후에 이 땅에서 살게 될 새로운 삶을 천상(天上)에서의 그분의 삶에 필적하는(conformem) 것으로 이야기한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죄에 대하여 죽어야 한다’고 그가 진술한 것은, 우리의 죽음이 그분의 죽음과 같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왜냐하면 죄가 우리 안에서 죽을 때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경우는 달랐다. 그분이 죄를 멸하신 것은 그분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서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 줄을 믿는다고 앞에서 진술한 바 있다(롬 6:8).

여기서 ‘믿는다’는 말은 그가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만일 그가 단지 우리의 의무에 대해서 경고하는 것이었다면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기 때문에, 또한 그분과 함께 살아야 한다.”

‘믿는다’는 말은 바울이 여기서 약속에 근거한 믿음의 교리를 다루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 자기들이 육신에 대해 죽는다는 것을 확신해야 하며, 그 동일한 그리스도께서 끝까지 그들을 새 생명 가운데 보존하실 것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져야 한다.”

‘살리라’라는 미래 시제 동사는 마지막 부활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사는 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새 생명의 여정이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