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6장

로마서 6장 1절 칼빈 주석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롬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바울 사도는 6장 전체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새 생명을 주시지 않으면서 우리를 값없이 의롭다 하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분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서 그는, 만일 인간이 계속해서 죄에 거하면 그것이 은혜를 드러낼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느냐는 반론을 제시한다.

우리의 육신이 그 어떤 핑계를 가져다 대서라도 자기 탐닉을 변명하려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사탄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은혜의 교리를 믿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종류의 비방거리를 아주 쉽게 만들어낸다.

우리의 육신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에 대해 듣고 나서 이런저런 장애물에 아주 여러 번 부딪친다고 해서 경악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에 관해 알려진 모든 진리는 인간의 판단과는 매우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된다는 이유로 그분이 억압을 당해서는 안 된다. 그분은 경건하지 않은 자들에게 멸망이 되시는 것처럼 경건한 자들에게는 부활이 되실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교리가 행여 불합리한 구석이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질문들에 부딪칠 때마다 그것들에 잘 대응해야 한다.

이제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할 때 가장 흔하게 제기되는 반론에 주목한다. 그 반론이란, 우리가 더 무거운 죄의 짐에 눌릴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 후하고 풍성하게 우리를 돕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죄의 심연에 빠져 들어가고 새로운 범죄를 자주 저지름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우리에게 최선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때만 우리는 더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고의 도움이 아닌가? 우리가 어떻게 이 오해를 논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