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5장

로마서 5장 17절 칼빈 주석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 하였은즉

바울은 자기가 비교한 내용을 전반적으로 수정하면서 계속해서 이 주제를 조금 깊게 다룬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현 주제의 모든 세부 사항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요점을 진술하는 것이다.

앞에서 그는 은혜의 권세가 죄의 권세보다 훨씬 더 풍성하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를 근거로 그는 신자들을 위로하고 강건하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도록 그들을 자극하고 격려한다.

그가 열심을 내서 이 사실을 거듭 언급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당당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도록 하고 또 그들로 하여금 자기 확신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자리에 이르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얻음으로써 온전한 확신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바로 감사의 궁극적인 원천이다.

이 구절 전체의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아담보다 뛰어나심으로 아담의 죄는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무력화된다는 것이다.

아담의 저주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지워진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부여하신 생명은 아담으로부터 나온 사망을 삼켜버린다. 그러나 여기서 비교 대상이 서로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바울은 ‘신자들이 왕 노릇 하리로다’라고 말하는 대신 ‘생명의 복이 은혜의 풍성함을 통해 더욱더 왕 노릇 하고 커져 간다’고 말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도 그 의미는 동일하다. 왜냐하면 신자들의 나라는 생명 안에 있고 생명의 나라는 신자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생략한 그리스도와 아담 사이의 두 가지 차이점을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그 차이점을 생략한 이유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열거하는 것이 지금의 논증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 차이점은,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그 이유만으로 우리가 정죄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만일 그렇게 이해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벌을 받는 셈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아담이 당하는 형벌로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우리 또한 죄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본성이 아담 안에서 부패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죄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의는 다른 수단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으로 회복시켜주신다.

우리가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 것은 우리 안에 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자신을 소유하기 때문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너그러우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모든 복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의 선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자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의의 선물이 의미하는 바는 의가 값없이 전가되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지금 ‘은혜’라는 단어에 대해 자기가 해석한 바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 차이점은, 아담이 온 인류를 정죄 당하게 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꽤 분명하다.

아담으로부터 유래한 저주는 우리에게 선천적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그 저주가 온 인류를 포괄한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그분께 접붙임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라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죄의 비참한 유산을 계승하는 일에 참여하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그 죄의 유산은 인간의 살과 피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의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신자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분과의 교제consortium에 참여하게 되기 때문이다.

영아들에게는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특별한 방식으로 전해진다. 영아들은 언약에 따라 양자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언약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그리스도와의 교통(in Christi communionem)에 참여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은혜의 약속이 주어진 경건한 자들의 자녀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인류가 처한 공통적인 운명에서 결코 제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