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5장

로마서 5장 14절 칼빈 주석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롬5:14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바울은 아담으로부터 율법이 공포된 시기까지 인간이 영위한 경솔하고도 파렴치한 삶이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좀더 분명하게 설명한다. 선악간의 구별이 사라졌고, 그 결과 율법의 경고가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죄를 기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죄는 여전히 활개를 치며 그들을 정죄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때에도 사망은 왕 노릇 했다. 왜냐하면 인간의 눈이 멀고 그 마음이 완악해졌다고 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이 어구는 사실상 아무런 죄를 범하지 않았으면서 원죄 때문에 죽는 어린아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나는 율법이 없는 상태에서 죄를 지은 모든 사람을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이 어구는 율법이 없었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고 하는 앞의 구절에 이어져야 한다.

분명한 계시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았던 아담과는 달리, 그들에게는 그런 계시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린 유일한 명령은 양심의 증거뿐이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바울 사도는 아담과 그의 후손 사이의 이런 차이 때문에 그들이 정죄를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나타내고 싶어 한 것이다. 영아들 또한 그들이 속한 보편적인 범주에 포함된다.

오실 자의 모형이라

이 어구는 비교의 대상이 되는 두 번째 절 대신 들어간 것이다. 비교하려면 두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오직 한 부분만 표현되고 나머지 한 부분은 파격 구문(어떤 구조로 시작된 글이 다른 구조로 끝나는 수사법)에 의해 생략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온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온 것처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의가 회복되고 의로 말미암아 생명이 회복되었다.”

우리는 아담이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바울의 주장에 전혀 놀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완전히 반대되는 것들에서도 어떤 유사점은 항상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아담의 죄를 통해 잃어버린 바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회복된다. 그러므로 아담이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불리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아담을 죄의 모형이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그리스도를 의의 모형이라고도 부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게 부른다면 아담과 그리스도는 우리보다 앞서 존재한 모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둘은 서로 대조되어 있다.

이 어구를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오리겐이 범한 치명적인 실수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그 둘이 대조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오리겐은 비기독교적인 철학적 용어를 사용해 인간의 타락을 이론화했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단순히 약화시킨 것이 아니라 거의 완전히 파괴했다. 에라스무스는 더더욱 용서할 수가 없다. 그는 너무도 엄청난 오해를 해놓고 그것을 변명하느라고 무진 애를 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