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롬 5:13
그가 여기에 이 삽입구를 집어넣은 것은 이의가 제기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율법이 없는 상태에서는 범죄가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에, 과연 죄가 율법 이전에 존재했는지 약간의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율법 이후에 죄가 존재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율법이 있기 이전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답한다. 율법이 있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기록된 율법에 따라 심판을 내리시지는 않았지만, 인류는 여전히 모태에서부터 저주 아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이 공포되기 이전에 사악하고 타락한 생활을 일삼던 자들은 결코 죄로 인한 정죄를 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언제나 세상에는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하나님 같은 신(神)에 대한 개념이 있었고 의에 대한 일종의 규범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해석은 너무도 알기 쉽고 명료해서, 이와 반대되는 그 어떤 설명도 충분히 반박할 수 있다.
율법이 우리를 책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죄 속에 잠들어 있게 된다. 우리의 악행에 대해 잘 안다 해도,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악에 대한 지식을 최대한 억누르거나 아니면 적어도 빨리 잊어버림으로써 그 지식을 지워버린다.
율법은 우리를 유죄하다고 선고하며 책망하지만, 다른 한편 우리로 하여금 정신 차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율법에 의해 자극을 받지 않을 때 인간이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 주목한다.
그들은 선악간의 구별을 아예 팽개쳐버리고, 하나님의 심판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마음껏 정욕에 빠져든다. 가인에 대한 형벌, 온 세상을 멸망시킨 대홍수, 소돔의 몰락, 아브라함 때문에 바로와 아비멜렉에게 가해진 형벌, 그리고 애굽 사람들에게 임한 재앙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악을 그들 탓으로 돌리신다는 것을 증거한다.
사람들이 죄가 있다고 서로를 고소하면서 쏟아놓는 많은 불평과 충고의 말을 들어보라. 또 자기들의 행위가 무죄하다고 애써 해명하는 변호의 말들도 들어보라. 모두 다 서로의 잘못을 고발하고 있음을 입증하지 않는가? 모든 사람이 선과 악을 둘 다 의식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많은 예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악행을 묵인해버린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그 어떤 죄도 자기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바울이 율법이 없었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고 주장할 때, 그는 비교적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율법에 의해 자극을 받아 행하지 않을 때는 나태함 속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 문장을 끼워넣은 것은 현명한 처사이다. 이는 율법이 공개적으로 유대인들을 정죄하므로, 그들이 자기들이 지은 죄가 얼마나 막중한지 이 문장을 통해 좀더 분명하게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유죄 혐의로 하나님의 법정 앞에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들도 형벌을 면제받을 수가 없다면, 율법이 전령관(傳令官)처럼 그 유죄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그들에게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위협하는 유대인들의 경우는 어떻게 되겠는가?
왜 바울이 율법이 있기 전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지만 여전히 죄가 왕 노릇 했다고 분명하게 진술하는지, 우리는 또 다른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 그는 사망의 원인이 율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다만 율법에 의해 사망의 원인이 드러났을 뿐임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진술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인간이 아담의 타락 직후에 비참하게 잃어버린 바 되었노라고 선언한다. 물론 율법에 의해서 그들의 파멸이 최종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여기서 반대를 나타내는 접속사 ‘데’de를 ‘비록 … 이지만’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문맥에 더 잘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구절의 의미는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비록 사람들이 스스로 쾌락에 빠질 수도 있지만, 율법이 그들의 유죄를 입증하지 않는 경우에도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