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5장

로마서 5장 10절 칼빈 주석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롬 5:10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이것은 그리스도의 살아나심과 죽으심을 비교함으로써 앞의 구절을 부연 설명한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방편으로 자신을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셨을 때 우리는 그분의 원수들이었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그분의 화목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친구가 되었다. 이 일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이루어졌다면, 그분의 살아나심은 훨씬 더 큰 능력과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구원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마음을 굳게 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내가 4장에서 밝힌 것처럼, 이는 그분의 죽으심이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속죄 제물이었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여기서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 같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보증이었다면, 우리는 그때에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존재들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그는 지금 우리가 원수 되었다고 말하지 않는가? 이 문제에 대한 나의 답은 이러하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인인 한, 우리 또한 그분께 미움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밀한 목적에 따라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에 받아들이시는 한, 그분은 우리를 미워하시는 것을 그만두신다. 우리가 은혜 가운데 다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 관한 한, 우리는 언제나 원수 된 자들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중재 역할을 하기 전까지는 그러하다. 우리는 이러한 양면성을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확신하는 것 외에는 그분이 우리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자비를 인식할 길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과 우리 사이가 좋지 않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목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이 우리에게 부여한 은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전에 우리에게 마땅한 분노를 발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에게 호의를 가지시는 것은 속죄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하게 된다. 우리가 은총 가운데 받아들여진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 덕분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의미는, 그분의 죽으심이 아니었으면 처벌을 받아야 마땅한 죄가 그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제거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