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5장

로마서 5장 3절 칼빈 주석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롬5:3

다만 이뿐 아니라 … 즐거워하나니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모든 자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세상에서 고통과 슬픔을 당한다는 사실에 대해 사람들이 코웃음을 칠 수도 있음을 예상한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이 고난 당하는 모습은 복된 삶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이 그들의 행복을 방해하기는커녕 그들로 자랑할 것이 더 많게 한다고 선언한다. 이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 그는 고난의 효과를 들어 논증을 편다. 그리고 기가 막힌 점층법을 사용해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이 우리의 구원과 궁극적인 선善에 기여한다는 최종적인 결론을 내린다.

성도들이 환난 중에 즐거워한다는 그의 주장을, 그들이 역경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혹은 역경에 처할 때 그 쓰라린 고통 때문에 비탄에 빠지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만일 그들이 쓰라린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면, 어려움을 겪더라도 인내의 열매가 맺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즐거워한다는 말은 맞다. 왜냐하면 그들은 슬픔과 비탄에 잠겨 있을 때, 가장 너그러운 하나님 아버지의 손이 그들이 겪는 그 모든 고통을 그들에게 선(善)이 되도록 역사하신다는 생각으로 큰 위로를 얻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기들의 구원이 촉진될 때, 신자들은 자랑할 만한 충분한 근거를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구절에서 배우게 되는 것은, 만일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입증하기 원한다면 우리에게 닥치는 환난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환난을 통해 인내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부패로 말미암아 무익하고 쓸모없는 것이 된다. 역경이 신자들의 자랑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그의 논증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입증된다.

즉, 그들은 자기들에게 닥친 역경을 참을성 있게 견딤으로써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되고, 그 경험은 그들의 소망을 더 굳게 하며 확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내를 배우지 못한 사람은 만족할 만한 진보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 확실하다.

성경은 성도들이 절망에 빠져서 쏟아놓는 불평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울의 논증에 반대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때로 주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크게 낙담하게 하고 곤란을 당하게 하셔서, 숨도 쉴 수 없게 만드시기도 하고 자기들의 위로의 근원이 어디인지 기억하지도 못하게 하신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망의 어두운 곳에 거의 다 잠겨버린 그들을 한순간에 생명으로 회복시키신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바울의 확언은 언제나 그들에게서 실현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

환난은 인내를

환난에서 자연스럽게 인내라는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알듯이, 아주 많은 사람들이 환난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기도 하고 그분을 저주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불어넣어주시는 내적인 순종의 마음과 동일한 성령께서 전해주시는 위로가 우리의 완고함을 대신할 때, 환난은 인내를 낳는 수단이 된다. 다만 우리가 완고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환난은 분노와 불만을 낳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