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4장

로마서 4장 25절 칼빈 주석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4:25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그는 내가 방금 언급한 교리를 아주 상세하게 부연 설명한다.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그분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성경에서 우리의 구원을 다룰 때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서만 자세히 설명한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

즉, 그는 우리 구원의 원인에 대해 좀더 분명한 설명을 하고자 마음먹고 구원을 이루는 두 요소를 언급한다. 첫째는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속함을 얻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의 의가 그분의 부활로 말미암아 얻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은혜를 소유할 때 온전한 의를 이루는 데 필요한 모든 부분이 채워진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분리해서 언급함으로써 바울이 무지한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쪽으로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바울이 다음 장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줄 테지만,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죽음으로 보여주신 순종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의가 얻어진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루셨는지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의 그분의 부활하심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구분한 것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죄를 속해준 그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고 결국 그분의 부활로 완성되었음을 가르쳐주는 것이기도 하다. 의의 시작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이고, 의의 완성은 사망이 멸망당함으로 생명이 지배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여기서 의도한 바는 우리의 죄에 대한 속함이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셔서 아버지 하나님의 은총을 입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분이 우리의 죄를 멸하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형벌을 그분이 우리 대신 받으심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사야는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사 53:5)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분이 죽으셨다고 말하지 않고 ‘내줌이 되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속죄는 이런 화목의 길을 택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선한 뜻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만일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이기시고 승리자로 떠오르지 않으셨다면, 그리고 하늘 영광 가운데 들어가셔서 자신의 중재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지 않으셨다면, 그분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스스로를 내어드리고 우리의 죄에 합당한 저주를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망을 이긴 칭의의 능력은 그분의 부활 덕분이다. 이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십자가의 희생이 우리의 칭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은혜의 온전함이 그분의 부활 생명을 통해 더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하반절의 의미가 삶이 새로워지는 것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바울 사도는 아직 그 주제를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상반절이나 하반절은 동일한 것을 가리키고 있음 또한 확실하다. 만일 칭의가 삶의 혁신을 의미한다면, 우리의 죄를 위한 그분의 죽음 또한 동일한 맥락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그분이 우리로 육신을 극복할 수 있는 은혜를 얻게 해주셨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견해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바울이 말한 것은, 그분이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로 죽음의 고통을 당하심으로써 우리를 죽음의 재앙에서 건져주셨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다’고 그가 말한 것은, 그분이 자신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생명을 온전히 회복시켜주셨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의 몸으로(in persona peccatoris) 죄의 비참한 상태를 견디기 위해서 하나님의 손에 맞으셨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분의 백성들에게 의와 생명을 값없이 주시기 위해서 생명의 나라로 의기양양하게 들어가셨다.

그러므로 바울은 여기서 전가(轉嫁)된 의에 대해서 여전히 이야기하고 있다. 곧바로 이어지는 다음 장의 본문이 이를 확증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