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4장

로마서 4장 21절 칼빈 주석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롬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바울이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어떤 비범한 점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능력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만큼 하기 어려운 일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작고 하찮은 것일지라도, 모든 방해물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손이 그분의 일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 결과, 아주 작은 시련이라도 있을 것 같으면 우리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린다.

내가 말했듯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분의 약속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되는 어떤 장애물이 나타나면 우리는 곧바로 그분의 능력을 깎아내린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서 그에 합당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장애물이 나타날 때 이렇게 마음먹어야 한다. “구름을 흩어지게 하는 데 태양의 강한 광선이 필요한 것처럼, 세상의 장애물들을 극복하는 데는 하나님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자주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한다고 해서 그분의 능력이 손상을 입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는 늘 변명을 늘어놓는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이 행하실 수 있는 것 이상을 말씀으로 약속하신다고 생각한다(이는 틀린 생각이며, 분명 하나님께 대한 신성모독이다).

그러나 이 생각이 사실이어서 우리가 주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연약함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연약함보다 더 위대하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우리는 그분의 능력을 충분히 높여드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믿음은 우리의 연약함과 곤궁함과 결점들을 바라보아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능력만을 온전히 주목해야 한다. 만일 믿음이 우리의 의나 존귀함에 달려 있다면, 그 믿음은 결코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하는 자리에까지 이르지 못할 것이다.

우리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주님의 능력을 가늠하는 것, 그것이 바로 바울이 앞에서 언급했던 불신앙의 증거이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가만히 앉아서 모든 일을 다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적으로 역사하는 그분의 능력을 주시하며, 특별히 그분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에서 그분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손은 언제나 그분이 말씀하신 바를 이룰 준비를 갖추고 있다.

에라스무스가 여기 나오는 관계사를 남성형으로 간주하고 싶어 한 것이 내게는 이상하게 생각된다. 남성형으로 이해했다고 해서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바울이 사용한 헬라어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다. 내가 알기로 여기 사용된 ‘약속하다’라는 동사는 수동형이다.

그러나 번역할 때 약간의 변화를 주었더라면 표현이 좀더 자연스러워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