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4장

로마서 4장 17절 칼빈 주석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롬 4:17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이 완곡한 표현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본질을 표현하고 있다. 이 표현을 사용한 목적은 아브라함의 예를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함이다.

아브라함은 주님의 입을 통해 들은 그 약속을 놀라운 방식으로 이루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때는 그 약속에 대한 아무런 증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그의 정력이 왕성하기라도 한 것처럼 씨에 대한 약속이 그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그의 생식 능력은 이미 멈춰진 상태였다.

그러므로 그는 생각의 수준을 높여,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죽은 자들인 이방인들이 그분과의 교제 가운데 들어오게 된 것은 전혀 불합리하지 않다.

이방인들이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자들은 아브라함에게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주님이 생명으로 부르신 자들이 죽은 자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지탱해주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은 죽은 자를 단 한마디 말씀만으로도 쉽게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일반 소명에 대한 전형과 모형을 보게 된다. 일반 소명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시작이 어떠한지 눈앞에서 보게 된다(그 시작은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첫 출생에 관한 것이 아니라, 내세의 삶에 대한 소망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특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든 간에, 거기에는 하나님 나라에 어울릴 만한 선한 것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완전히 죽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가지는 특성은 죽은 자가 주님에 의해서 살림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그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무언가가 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부르신다’는 말을 복음 전하는 것에 제한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서 흔히 의미하는 대로 그것은 죽음에서 일으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단어가 사용된 것은, 고갯짓 한 번으로도 자신이 원하는 자를 일으켜 세우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좀더 강하게 표현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