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4장

로마서 4장 13절 칼빈 주석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롬 4:13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이제 바울은 앞에서 잠깐 다루었던 율법과 믿음 사이의 현저한 차이를 좀더 특별하게 다시금 언급한다. 우리는 이를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만일 믿음이 칭의를 위해서 율법으로부터 아무것도 빌리지 않는다면, 여기서 우리는 믿음이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심과만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 어구에서 율법이 의식을 지키는 것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부질없는 공상은 쉽게 그 오류가 입증된다. 왜냐하면 행위가 어떤 식으로든 칭의에 도움이 된다면, 그는 그 언약이 ‘(기록된)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본성의 법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거룩한 영적인 삶을 의식과 대조시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거기에서 난 의에 대조시킨다. 그러므로 결론을 말하자면,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이 주어진 것은 그가 율법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그 약속을 받을 만한 공로를 세웠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울이 곧이어 덧붙일 텐데) 인간은 자기의 합법적인 권리가 아닌 것을 값없이 얻었다고 느낄 때, 오직 그때만 양심에 진정한 평화를 누린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여기서 내릴 수 있는 또 하나의 결론은 유대인 못지않게 이방인도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유익을 얻는다는 것이다. 믿음의 의의 원인이 유대인과 이방인 둘 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과 같다.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의 선하심에만 기초한다면, 구원에서 이방인을 제외하는 사람들은 있는 힘을 다해서 구원의 과정을 제한하고 방해하는 것이다.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바울 사도는 지금 영원한 구원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독자들에게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약간 타이밍이 안 맞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세상’이라는 단어에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에 대한 소망을 포함시킨다. 사실 신자들의 삶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관건이다. 그러나 온 세상의 타락한 상태도 회복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히브리서 1장 2절에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만유(萬有)의 상속자라고 부른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됨으로써 아담 안에서 잃어버렸던 기업을 다시 얻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이라는 실례를 통해, 아브라함에게 천국의 삶에 대한 소망뿐만 아니라 그분에게서 나오는 충만하고 온전한 복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세상을 얻게 되리라는 약속이 주어졌다고 바울 사도가 가르치는 것은 정당하다.

경건한 자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약속을 조금 맛본다. 이는 그들이 역경과 곤궁으로 말미암아 아무리 자주 괴로움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창조해놓은 것들을 평안한 양심으로 받아 사용하며, 기꺼이 은총을 베푸시는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의 복들을 받아 누림으로써 영생에 대한 약속을 미리 맛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궁핍함 때문에 그들이 땅과 바다와 하늘을 자기들의 소유로 인정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

경건하지 못한 자들이 이 세상의 부富를 탐욕스럽게 긁어모은다 해도, 그들은 그 어느 것도 자기 것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 오히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낚아챈 것, 훔친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서 그것을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건한 자들이 부족하게 살기는 하지만 다른 이들로부터 어느 것도 훔치지 않고, 자기들의 기업(基業)을 완전히 소유하게 되는 날까지 하늘 아버지의 손에서 적법한 할당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궁핍한 중에 있는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그때가 되면 모든 피조물이 그들의 영광을 드높여줄 것이다. 하늘과 땅 모두 각각의 분량에 따라 하나님 나라를 더욱 영광스럽게 하는 데 기여하도록 새롭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