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4장

로마서 4장 9-10절 칼빈 주석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롬 4:9,10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바울이 할례와 무할례만 언급하기 때문에, 많은 해석자들은 어리석게도 여기서 쟁점이 되고 있는 유일한 문제는 율법의 의식들로 말미암은 의를 얻는 것뿐이라고 결론 짓는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이 지금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상대로 논증하고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위선자들이 일반적으로 칭찬받을 만한 행위에 대해 자랑하지만, 실은 겉으로 드러나는 그럴듯한 모습으로 자기들의 행위를 위장한다는 것을 안다. 유대인들도 율법을 심하게 오용함으로 말미암아 참되고 진정한 의에서 멀어지게 된 자기들 나름의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바울은 값없는 용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들만 복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행위를 심판 받게 되는 사람들은 누구나 저주를 받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자기 자신의 가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원리가 세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죄의 사면이 모든 행위를 선행하지 않는다면, 이 원리조차 충분하지 않게 된다. 이 모든 행위 중에서 으뜸가는 것이 할례였다. 그것은 유대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한 순종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 할례 이야기도 언급하면서 논증한다.

여기서 할례는 율법에서 난 의의 ‘입문’(入門) 과정으로 언급되고 있음을 항상 기억하자. 유대인들은 할례를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자랑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할례를 행함으로써 율법을 기특하게 잘 지켰다는 것을 자랑했다.

자기들이 굉장한 탁월함을 가지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보다 스스로를 낫게 여긴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단 하나의 의식에 대해서 논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의식이 포함하는 율법의 모든 행위, 즉 마땅히 보상 받아야 할 모든 행위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할례가 특별히 언급된 것은 그것이 율법에서 난 의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역(逆)으로 논증을 펼친다. 만일 아브라함의 의가 ‘죄가 사해지는 것’이라면(그는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이 의를 얻었다면, 죄 사함은 이전의 공로 때문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는 이 논증이 원인과 결과의 순서에서 나온 것임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원인은 항상 결과보다 선행하며, 아브라함은 할례 받기 전에 의롭다 함을 받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