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4장

로마서 4장 12절 칼빈 주석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롬 4:12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여기서 ‘받을’이라는 단어는 ‘받은 것으로 간주되는’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왜냐하면 바울은 외적인 할례만을 받고 그것을 자신 있게 자랑하는 아브라함의 육신의 후손들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중요한 점, 즉 아브라함의 구원을 보증해주는 유일한 요소인 그의 믿음을 본받는 것을 소홀히 여긴다. 그래서 바울은 여기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믿음과 성례를 구별하는 것 같다.

이는 아무도 할례가 자신을 의롭다 하기에 충분한 것처럼 착각하고 믿음은 제쳐둔 채 할례만으로 만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뿐만 아니라 믿음만이 칭의에 필요한 모든 요구 조건을 만족시킨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는 할례 받은 유대인들이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아브라함의 순수한 믿음을 본받는다면 꼭 할례가 필요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다른 어떤 도움 없이 믿음만으로 의를 얻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함이 아니라면 그가 왜 ‘무할례시에’ 된 믿음을 언급하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칭의의 두 원인을 혼동하지 않도록 할례와 믿음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구약과 신약의 성례를 구분 짓는 중세 스콜라 철학의 교리도 동일한 논증으로 반박할 수 있다.

스콜라 학자들은 칭의의 능력을 신약의 성례에 부여하면서 구약의 성례는 그런 능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기 때문에 할례에는 칭의의 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 바울의 논증이 옳다면, 그 동일한 논증이 우리에게도 효력을 발휘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이 세례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동일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