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 롬4:4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앞 다투어 추구해야 할 그런 선한 일에 열심인 사람이라는 뜻으로 ‘일하는 자’라는 표현을 쓴 것이 아니다. 그가 의미한 바는 자기 자신의 일을 통해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자라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을 아니하는 자’라는 표현은 자기 일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는 자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신자들이 나태하게 빈둥거리는 모습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가對價를 바라는 식의 태도, 곧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을 청구하듯 하나님께 무언가를 요구하는 태도를 가지지 말라고 그들에게 명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논의하고 있는 쟁점이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규제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우리 구원의 이유에 관한 것이라고 이미 밝혔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빚을 갚듯이 의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선물로서 주시는 것임을 역逆으로 논증한다.
나는 바울의 논증 형태가 단 하나의 어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문장 전체에서 나온 것임을 입증함으로써 다음과 같이 이 구절을 표현한 부처의 의견에 동의한다.
“자기 일로 어떤 공功을 얻는 사람이 있다면, 그 공은 값없이 그에게 전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으로 그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믿음이 의로 여겨지는 것은 믿음이 우리에게서 어떤 공로를 드러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붙잡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는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값없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 자신의 선하신 뜻에 따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다 하시므로, 바울은 항상 이것을 우리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다는 증거로 삼는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한 우리의 속죄물이 되신다는 사실 외에 우리가 무엇을 믿는다는 말인가? 이 동일한 진리가 갈라디아서 3장 11, 12절에 다른 단어들로 표현되어 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율법은 행위에 대한 보상을 약속한다.
그러므로 이 사실에서 바울은, 믿음에서 난 값없는 의는 행위에서 난 의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만일 믿음이 행위에 근거해서 사람을 의롭게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믿음에서 난 의와 행위에서 난 의에 대한 이 비교를 잘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러면 그 어떤 공로 이야기도 전혀 들먹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