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3장

로마서 3장 28절 칼빈 주석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바울은 자기의 주된 주장을 이제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진술하고, 그것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이는 행위가 명백하게 배제될 때,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가 좀더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믿음을 행위의 공로에 관련시키려고 많은 애를 쓴다. 참으로 그들은 인간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믿음으로만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말로는 칭의의 능력이 믿음에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사랑에 칭의의 능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바울은 칭의가 값없이 주어진다는 것을 확언함으로써, 그 어떤 행위의 공로도 칭의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아주 분명히 한다.

나는 그가 왜 행위를 율법의 행위라고 부르는지 이미 설명했다. 그리고 율법의 행위를 의식儀式을 지키는 것에 한정시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짓임을 입증하기도 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상태에서 행해진 율법 조문의 행위들을 율법의 행위라고 보는 것 또한 잘못된 해석이다.

이와는 반대로, 그가 덧붙인 ‘율법’이라는 단어는 ‘공로가 인정됨’이라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왜냐하면 율법의 행위라는 말에서 율법이 가리키는 것은 율법에 약속된 보상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믿음으로만이 아니라 행위로도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야고보가 말할 때, 그것은 앞의 견해와 전혀 대립되지 않는다. 두 견해를 모순되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야고보가 사용한 논증의 성격을 살펴보는 것이다.

야보고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사람이 어떻게 혼자 힘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를 얻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입증하느냐 하는 것이다.

야고보는 자기들이 믿음을 가졌노라며 무익한 자랑을 하는 위선자들을 논박하고 있다. 그러므로 야고보가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말을 바울의 경우와 다르게 사용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비논리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이라는 단어 또한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문제에 대한 바른 판단을 내리려면 ‘믿음’이라는 단어가 가진 다의성多義性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문맥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야고보는 사람이 행위로 자기의 의를 입증하지 않는다면 거짓 믿음 혹은 죽은 믿음으로는 자기가 의롭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나의 《기독교 강요》를 참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