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3:24
여기서는 헬라어 어법에 따라 분사分詞가 동사 대신 사용되고 있다.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으로 타격을 입은 인간에게는 썩어 없어질 것밖에 남아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그분의 자비하심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의미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비참함을 도우러 오셔서 신자들에게 자신을 주심으로써, 그들이 자기들에게 부족한 모든 것을 오직 그분 안에서만 찾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아마도 성경 전체에서 의의 효력을 이 구절보다 더 인상적으로 설명한 구절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동력인動力因이고 피 흘리신 그리스도께서 질료인質料因이며 말씀을 통해 가지게 된 믿음이 형상인形象因 혹은 도구인道具因임을, 또 하나님의 정의와 선하심 둘 다에서 기인한 영광이 목적인目的因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동력인에 관해서 바울은 우리가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더구나 그분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한다. 이렇듯 그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고 우리 자신에게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표현을 두 번이나 사용한다.
은혜를 공로와 대립시키는 것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그는 우리가 불완전한 의의 개념을 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반복을 통해 자기가 의미하는 바를 좀더 명확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궤변가들이 자기 자신의 궁핍함을 억지로 고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는 그들이 여러 부분으로 쪼개어 난도질해놓은 우리 의에 대한 모든 영광을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만 돌렸다.
아버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으며 우리의 소송을 떠맡으심으로써 우리를 사로잡고 있던 사망의 폭정暴政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셨다는 사실, 이것이 질료인이다.
그분이 드리신 속죄제물 때문에 우리의 유죄 사실은 제거된다. 여기서 다시금 우리는 의를 하나의 자질資質로 보는 사람들의 허구를 완전히 박살내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값을 치르고 우리를 속량하셨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없는 것을 다른 근원으로부터 빌려온 것이 분명하다.
곧바로 바울은 이 구속救贖의 가치와 목적에 대해 설명한다. 이 구속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한다는 것을 좀더 분명하게 설명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를 화목제물이라고 혹은 (나는 고대의 표상에 대한 언급을 더 좋아한다) 시은좌施恩座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가 의미하는 바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우리와 화목하게 하실 때에만 우리가 의롭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가 말한 내용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