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3:22
바울은 이 칭의가 무엇인지 간략하게 밝힌다. 즉, 그 칭의는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하며, 믿음으로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다시 언급함으로써, 그분을 단지 자기가 이야기하고 있는 의를 승인하시는 분으로만이 아니라 그 의를 빚어내시는 분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마치 그는 그 의가 하나님에게서만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혹은 그 의의 기원이 하늘에 있다고, 그러나 그 의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드러나게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 주제를 논해야 할 것 같다. 첫째, 우리의 칭의에 관한 문제는 인간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에 맡겨야 한다.
율법의 약속과 경고들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듯이, 하나님 앞에서는 오직 율법에 대한 완벽하고 절대적인 복종만이 의로 간주된다. 만일 그처럼 완벽한 성결에 이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모든 사람이 본질적으로 의를 결여하고 있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도우러 오셔야 한다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왜냐하면 홀로 의로우신 그리스도께서 그분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켜주심으로써 우리를 의롭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해서 믿음으로 얻는 의가 그리스도의 의인지 알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롭다 칭함을 받을 때, 동력인(動力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운동 혹은 변화에 일반적으로 필요한 네 가지 원인 중의 하나. 그 밖에 질료인, 형상인, 목적인이 있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이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칭의의 질료인質料因이시며, 말씀은 믿음과 함께 도구가 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고 하는 이유는, 의가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이고 믿음은 우리가 그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자가 될 때, 우리 자신이 의로워질 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위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것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행위에 들어 있는 그 어떤 불완전함도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지워지기 때문이다.
조건적이었던 약속들도 그 동일한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성취된다. 이는 값없는 용서로 인하여 우리의 행위가 가지고 있는 결점들이 덮어지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를 온전한 것으로 보상해주시기 때문이다.
(칼빈 역에는 ‘모든 믿는 자에게, 그리고 그들 위에’라고 되어 있음) 알기 쉽게 더 자세히 설명할 목적으로 그는 같은 진리를 다른 표현을 써서 반복한다.
이는 우리가 이미 들었던 내용을 좀더 충분하게 표현하기 위함이다. 즉, 하나님의 의를 얻는 데 믿음만 요구된다는 것과 신자들은 외적인 표시에 따라 차별되지 않는다는 것, 그러기에 그들이 이방인인지 유대인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의를 구해야 할 필요성을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역설한다. 그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의를 얻는 다른 방법은 없다. 의롭다 칭함을 얻는 데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방법이, 다른 사람에게는 저런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을 얻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인이고,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