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3장

로마서 3장 9절 칼빈 주석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롬 3: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바울은 중심 주제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온다.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는 그들이 이방인들보다 자기들을 낫게 여기는 이유로 삼았던 영예로운 특징들을 자세하게 언급했다.

이제 그는 ‘그들이 어떤 면에서든 이방인들보다 나은가’라는 질문에 대해 마침내 대답한다. 그의 대답은 그가 앞에서 말한 것과 조금은 차이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가 앞에서는 유대인들에게 그토록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지금은 그 모든 것을 그들에게서 빼앗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 불일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인정한, 그들을 탁월하게 해주는 그 특권들이 그들에게는 피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특권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달려 있는 것이지 그들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들이 자랑할 수 있는 어떤 가치를 본래 가지고 있었느냐고 묻는다. 그가 제기한 두 가지 대답은 서로 너무도 잘 들어맞아서, 하나가 다른 하나로부터 나온 당연한 결론이 된다.

그가 그들의 특권을 하나님께로부터만 나오는 은혜에 포함시키면서 칭찬한 것은, 그들이 자기들 소유라고 할 만한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 칭찬을 근거로 그가 지금 대답하고 있는 내용을 곧바로 추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맡겨졌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이 다른 이들보다 나은 주된 이유라면,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공로로 말미암아 이 탁월함을 소유하게 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자랑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가 채택한 거룩한 기교를 주목하라. 그는 유대인들이 탁월함을 가졌다고 언급할 때는 그들을 3인칭으로 부른 반면, 그들에게서 모든 특권을 박탈할 때는 모욕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그들 중에 포함시킨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바울이 여기서 사용하는 헬라어 동사 ‘아이티아스다이’aitiasthai는 엄격히 말해 법정 관련 용어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부분을 ‘우리가 고발하였느니라’라고 풀이하고 싶다. 소송에서 원고原告는 다른 증언들과 증거들을 동원해서 죄를 입증할 준비를 갖추고 죄를 ‘고발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제 사도 바울은 온 인류를 하나의 정죄 아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하나님의 법정으로 소환한다. 여기서 그가 모든 사람을 단순히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소 사실을 좀더 특별하게 입증하고 있다면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키케로가 어떤 글에서 고발과 비난을 구분하면서 말한 것처럼, 고발은 확실하고 타당한 증거에 입각한 것이 아니면 참되지 않기 때문이다.

‘죄 아래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 정죄 받는 것이 정당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우리가 죄에 합당한 저주 아래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의義가 있는 곳에 사죄赦罪가 있듯이, 죄가 있는 곳에는 정죄가 따르기 마련이다.